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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타임즈] 16.03.12. 단군사회와 동이족과 혼혈 잡족 - 토착민과 이주민의 융합 관계 <하>

방석종 2016. 3. 11. 21:57

[기독교 타임즈] 16.03.12. 단군사회와 동이족과 혼혈 잡족 - 토착민과 이주민의 융합 관계 <하>



단군사화의 동이족과 혼혈 잡족 copy.pdf




"보소서 우리가 한 골육이니이다"


누가 개인적으로 이념적인 주장을 내세우기 보다는 유구한 역사에서 흘러내려오는 단군사화 이야기는 한민족(韓 民族)의 성전(聖典) 구실을 하며, 남한과 북한의 단군사화 이해에서 공통으로 이해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환웅 이주민 집단과 선주민 곰 씨 족의 결합을 인정하는 것이다. 천상에서 환웅의 하강은 토착사회보다 우세한 발전된 문화의 유이민 집단이 새로운 땅에 이주하는 것이요, 환웅족의 등장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가 지시하는 땅 카나안으로 자기 가족들과 소유물을 가지고 들어와 선택된 백성이 된 것과 비교 된다. 단군사화는 천상과 지상의 수직적인 표현을 해서 이 세상과 떨어진 분리된 것처럼 이야기 한다면, 아브라함의 카나안 이주도 수직적인 표현은 마찬가지이다. 곰이 호랑이와 한 동굴에서 동거하는 것은 곰이 아내로서 호랑이 남편과 결혼했지만, 나중에 곰은 환웅과 다시 결혼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구약 호세아 예언서에서 이스라엘이 처음에는 토착신 ‘바알’과 결혼했지만, 나중에 ‘야웨’ 하나님과 결혼하여 선택된 백성이 된 것과 비교된다(호 2 :14-17, 19-23 참조). 이는 이스라엘 토착민이 처음에는 토착종교를 믿다가, 나중에는 유이민이 믿는 유일신 야웨 종교를 받아드리고 흡수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단군고기는 곰 씨 선주 토착민(=카나안 족)이 환웅 족 유이민 집단(= 아브라함 셈족 )에게 흡수 정복되는 과정을 반영한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수많은 부족들 중에서 ‘환웅 족’이 등장하여 선민사상을 표방하는 과정이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선민이 되는 것과 일치되지만, 선민(選民)이 비천한 토착민과 섞이는 것이 하나의 ‘치욕’(恥辱)이 된다. 

단군사화는 하느님을 섬기는 천신신앙(天神信仰)을 믿는 시베리아 환웅 족(桓雄)이 만주와 한반도의 마고 웅족(雄族)과 만나 한민족이 되는 것을 말한다. 단군사화를 논하는 역사학자들은 고조선어(古朝鮮語)를 말하는 고조선의 동이구족(東夷九族)과 수많은 변방 후국의 족속을 고조선 통치구조에서 말하고 있지만, 여기서 그 내용은 생략하겠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부여(夫餘) 동이족 곰족의 여러 갈래에서 예맥 족을 말한다. 따라서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는 단군사화의 동이족의 여러 갈래에서 볼 수 있겠으나, 중국 한족과 다른 한족(韓族)이다. 그럼에도 현대에 와서 만주족과 한반도 한족을 차별해서 서로 불화(不和)하는 것은 또 하나의 민족적인 수치이다. 


이스라엘 제사장 제도와 카나안 제도의 융합 


그러나 이스라엘이 한 골육으로 서로 살생은 하지 않았어도, 하나님 유일신 신앙으로 토착민과 유이민이 융합되어 선민이 되었어도,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은 다윗-솔로몬 통일 왕국이후에는 남북분단의 약소국으로 전락하여, 서로 피튀기는 경쟁자로 형제국가를 공격 침략하면서, 강대국 앗수르, 바빌론에게 이적행위(利敵行爲)를 하다가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기원전 722년에, 남왕국 유다가 바빌론에게 587년 완전히 멸망하여 역사에서 사라진 망국(亡國)백성이 되었다. 이스라엘 제사장 제도는 카나안 제도와 제의를 막지 못하고, 풍요제단과 안일한 육신의 만족 그리고 정의를 상실한 물질탐욕과 탈취로 이웃을 괴롭혔다. 제사장 제도에 의해서 출애굽 과정에서 미디안 법의 신과 율법이 무시당하고 예언자를 대항하여 평화를 강조하면서, 예언자들은 백성을 불안과 두려움으로 몰고 가는 선동꾼으로 핍박받았다(렘 20 : 1-2). 이스라엘이 본래 카나안 태생의 죄(罪) 때문인가 ? 기독교 신자들은 성경을 보면서 회의를 느끼는 것이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백성이라면, 왜 계속해서 유일신 하나님을 떠나서 윤리적으로 부정하고, 부패하여 다신론적인 정황에서 물질탐욕과 풍요에 안주하려고 하는가 ? 왜 예언자들에게 질책과 심판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 셈계 아브라함의 야웨 하나님을 믿어 선민이 되었으면서 카나안적인 물질 예배 관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렘 22 : 21 비교). 이유는 이스라엘이 본시는 본래 카나안 족이요, 토착민의 혈통으로 유이민 집단의 계시종교와는 거리가 있으며, 본래 카나안 제의종교에 익숙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는 한국 기독교인이 교회예배를 드리면서, 성경 중심의 말씀해석보다는 물질축복을 사모하는 ‘샤만적인’ 근성과 비교된다. 환웅의 천신신앙의 ‘교육적인’ 하느님이 아니라 마고 웅족의 토착적인 샤만적인 관습이 아닌가 ? 교회 예배 중 뜨거운 열기는 카나안의 열광적-광신적인 예배를 방불케 한다. 북한의 주체사상 열기 또한 ‘카나안’의 광신적인 제의에 가깝다. 셈계 아브라함의 유일신 계시종교가 카나안의 토착적인 제의를 흡수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토착세력에 삼켜진 것이다. 말씀이 거짓 영에게 지배받는 형국이다.  현재 대한민국 기독교 예배를 보면, 예언자의 말씀의 ‘예언적-율법적’인 설교는 작아서 들리지 않는 반면, 평화와 평안만 듣기 좋게 반복되면서, 물질추구의 제의(祭儀)만 으뜸신앙으로 강조되고 있다. 카나안적-샤만적인 제의가 계시말씀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은 현대판 ‘카나안’ 도시 국가


남한이 최근 세계경제 규모가 10위 안팎에 있으며, 북한이 핵보유 국가를 자처한다고 하지만, 중국과 미국 영토의 40, 50배 작은 땅의 소국(小國)이다. 그런데 북한의 해외 수입 90 %가 김정은 개인금고로 입금된다고 한다(조선일보 2016.2.27.일자 A3 참조). 그리고 누가 자존심 건드리는 말만 하면, 가루를 내겠다고 한다. 전쟁은 한 국가의 위력이며, 영향력을 형성하는 것이며, 전사자 생명에 책임과 보상 내지 배상을 감당할 각오가 서야 한다. 그럼에도 지도자 개인 마음대로 명령만 하면 곧 전쟁이 일어난다는 발상은 시대에 뒤떨어진 자멸적인 과대망상이다.   역사적으로 동이족 고대 한 민족의 ‘군자국’전통이 중국 주(周)나라 때만해도 교육적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4000년 전부터 쓰인 산해경).주 나라는 도덕정치를 통해 문화적으로 발전하면서 영토가 넓어졌다. 동이족 발원지인 산동반도, 동북아와 한(韓)반도인데, 한족(韓族)이 화족(華族)에게 동화되지 않고 광대한 만주벌판을 다스렸지만, 흉악무도한 족속으로 전락한 것을 어쩐 일 인 가 ?  중국 대문 앞을 지키는 사나운 개 밖에 안 되나 ? 동이족이면서 동족상잔을 한 고구려와 신라의 전쟁에서 고구려가 역사에서 사라졌다. 산동반도, 동북아의 동이족들이 중국 속으로 동화되고, 산산이 흩어졌다. 북한 정치구조는 ‘하나님’을 추방하고 ‘인간’이 주인이 된 신상(神像) 숭배에 몰입되어 백성을 노예화한 특수층의 사집단(私集團)이다. 한족의 대동(大同) 평등 정신이 특권 당원조직이 되어 가증(可憎)한 토착민의 우월감을 번득인다. 이미 북한은 정권교체가 필연적이며, 내부 붕괴 시 스스로 자신의 주인 됨을 자각하는 시기가 닥아 오고 있다. 

이런 문화의 쇠퇴와 내부의 붕괴는 이미 억압에 대항하는 ‘자유’를 향하고, 낙후된 사회 경제는 새로운 혁명으로 타오르고 있다.  다시는 7세기 중엽 삼국이 중국세력을 업고 한 골육인 형제국가를 치는 재앙(災殃)이 없어야 하겠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북왕국 이스라엘 지파들과 남왕국 유다지파는 서로 독립을 유지하면서 ‘형제관계 구조인 국가형태’즉 연합(Personalunion) 통치를 체결한다. 블레셋의 선진 군사공격으로 동진 영토 확장의 위협에 직면해서 평화통일을 체결하였다. 이것이 하나님 백성의 자유와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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