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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사화와 기독교 토착화 론

방석종 2016. 4. 26. 19:49

본문: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사탄이 즉시 와서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 ...잠깐 견디다가 환난이...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 떨기에 뿌려진 자니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욕심이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4:15-20 ; 13:3-9 ; 8:4-8 비교)

 

열매를 맺음의 비유는 성경적인 어법에서 하나님을 위한 열매 맺음을 나타내며(7:4) 앎과 행동이 결부되어(1:10) 현재의 삶에 관련 된다. 기독교적인 삶은 말씀이 작용하는 일상생활에서 열매를 맺게 될 때 의미를 갖는다. 특히 100배의 열매 맺음은 환상적으로 해석 된다 하더라도- 이것은 교회 안에서 상이한 신분들의 다양한 금욕적인 진지성이나 말씀을 향한 비상한 노력에 관련 된다(Das Evangelium nach Markus/Joachim Gnilka, 1978, 마르코 복음 1, J. 그닐카, 한국신학 연구소, 2001 , 8 , 224-227 참조)

필자는 감리교 신학대교의 기독교의 토착화론을 연구하여 공헌한 스승들의 토착화 이론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분들의 이론이 알게 모르게 필자로 하여금 이런 글을 만년에 또 쓰게 하는 것에 감사하며, 뒤에 가면서 그 분들의 연구와 견해를 인용 하겠지만, 여기서는 우선 독자적으로 기독교 토착화 론의 개념정의를 해보려 한다.

사전에 보면 토착화’(土着化)는 어떤 제도 풍습 문물 따위가 땅에 뿌리를 박음, 또는 뿌리 받게 함이고, ‘토착은 대대로 그 땅에 정착하여 정주하는 일이다(엣센스 국어 사전, 민중서림 편집국 편, 4 판 전면 개정판, 1996, 2333 쪽 참고). 다시 정리하면, ‘토착화는 예부터 조상 대대로 전해지는 정신적-종교적인 유산, 인류 보편적인 것 내지 성서적인 것과 가깝고 친속적인 것을 찾아 말씀에 부응되게 하는 것이 곧 토착화이다.

우리는 성서와 기독교를 두 가지 측면에서 보면, 보편적으로 성경과 기독교는 고대 히브리어 유대교 경전과 초대교회 그리스어(헬라어) 서구 기독교를 중동 이스라엘과 소아시아-유럽 문화권의 산물로 보아야 하지만, 그리고 문화가 정신적인 소득이며, 문명이 정신적인 진보와 발전이라 해도(엣센스 국어사전, 833-834 쪽 참조), 특수 신앙적인 관점에서는 문물(文物)을 창조하는 활동력 내지 생명력이라는 고백을 견지한다. 이런 신앙 고백은 표현상 제한적인 의미를 가지면서도, 의미적으로는 무제한성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야웨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계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7:12; 28:1-14 참조).

위에서 우리는 신약 막4:2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라.”는 구절과 구약 신명기 7:12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야웨께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에서 말씀/법도를 듣고 받아/행하면이 중심적인 의미라는 것을 본다. 말씀과 법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와 기독교 공동체 교인을 대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앙의 권면은 모든 종교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기독교의 삶은 하나님/예수-인간관계에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믿음의 생활을 지시한다면, 기존 종교인 유교와 불교는 ’() 믿음없이 자력(自力)의 깨달음으로 말씀과 법도를 행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우리의 주목을 끄는 듣고 행함이 고조선 건국통치 역사 사화(史話)에 나온다. 그것은 환웅과 호랑이/곰의 사람됨의 이야기와 환웅과 웅녀의 결혼이다.

 

환웅천왕은 ... 인간 세상에 관한 360여 가지 일을 관장하면서 세상에 머물러 다스리며 교화하였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신령스러운 환웅에게 변하여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 곰과 범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금기한 지 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금기하지 못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여자가 된 곰은...아이를 잉태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와 혼인하여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 이라고 하였다.” 이런 이야기에는 상징적인 신비(神秘)한 사례와 의미가 있어 고조선 역사에 대한 공통적인 해석이 알려져 있다. 토착민 곰과 호랑이 족이 유이민 환웅 족 지도자에게 변화된 새사람되기를 간구하여 환웅이 권한 금기사항을 듣고-인내-고행-금욕-인간변화의 과정이 모범적인 전형을 제시 한다. 이야기 중에 범은 금기하지 못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된 곰이 환웅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는 성공한 삶과 구별됨과 동시에 사람이 되지 못한 호랑이의 실패에 대한 심판을 보여 준다.

 

정리: 4:15-20절에는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의 비유4가지로 이야기 한다:1. 말씀을 사탄에게 빼앗기는 사람, 2. 변덕스럽고 일시적이며 참지 못하는 사람, 3. 신앙과 재물을 함께 갖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 4. 금욕적인 진지성이나 말씀을 향한 노력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사람이다(4:20, 상게서, J. 그닐카, 225-227 쪽 참조; 7:5-6 비교).

환웅사화에는 곰과 호랑이가 같은 굴에 살면서 신령스런 환웅에게 변하여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곰과 호랑이는 쑥 한줌과 마늘 20 쪽을 먹고 금기한지 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금기하지 못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역주 삼국유사 I, 2. 고조선, 140-145 쪽 참조).

위에 막 4:15-204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에서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는 기독교 토착화 론에 잘 적용되는 내용이다. ‘복음은 씨요, ‘은 전도되는 나라의 문화와 인간 기질과 성격에 해당한다면, ‘좋은 땅’(4:20)’(환웅사화)은 말씀과 권면을 받아 인내 금욕하여 그리스도인/변화된 새사람이 되는 것이 공통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기독교 토착화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기독교인이 됨에 그 목적이 있다. 결코 말씀이 나라의 문화나 기존 종교와 융합되거나 유사성의 비교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환웅사화는 인류조상의 유일한 하나님을 향한 곰 족의 신앙과 그런 행위로 사람의 몸으로 변화된 동기(모티프)를 제시하는 것이 복음서의 예수의 말씀을 받아 기독교인이 되는 좋은 땅을 가진 대한민국 백성의 성향을 보인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