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신 신앙에 근거한 홍익인간 사상
방석종
2016. 3. 30
인류조상의 하나님과 고조선(단군사화)의 웅녀
성경 본문: “그리고 셰트(셋)에게도 한 아들이 출생되었고, 그는 그를 애노쉬라 불렀다. 그 당시 사람들이 야웨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창 4:26)
필자가 신학생 때 일이다. 수업시간에 구약 교수님이 유일신 하나님 야웨(여호와)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이전부터 계셨다고 했다. 그럼 그 유일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믿는 야웨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 입니까? 라고 질문을 하자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하신 기억이 난다. 참으로 헷갈리는 신학적인 문제였다. 창세기의 유일신 하나님(창 4:26)이 출애굽기 3장(3:2-10, 14)의 야웨 하나님보다 어떻게 일찍부터 계신 분 이었는가? 창세기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시고, 태초 인류 조상들이 제의적(祭儀的)인 행동을 생각하지 않고 종교적인 관계를 가진 ‘유일한 한 분’ 하나님이시다. 자연 원시생활 속에서 불안한 인간이 자신을 위해서 탄식, 찬양하며 신뢰하는 데서 그 분의 ‘이름’을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고대 원시 종교 학자들(예 J. 스킨너, 쉬로코고로프, 책명은 생략함)은 하나님 이름을 부름이 결코‘주술적인’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태고 적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다만 ‘한 분’으로 불러가며 헌신적으로 만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원래 이스라엘 조상에게서 있던 원시 종교가 아니라, 인류 조상 애노쉬의 신앙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구약의 하나님은 선사시대건 역사시대건 모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생각하고 있던 것이 이제는 선사시대(先史時代) 창 4:26절 애노쉬의 야웨 부름의 설명으로 오해가 풀려야 하겠다. 구약 이스라엘 하나님이라는 선입견(先入見)없이 태고 적 선사시대 이전부터 창조주 하나님-피조물 인간, 인류의 관계에서 불러진 ‘한 분 하나님’이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계신 것이요, 따라서 한족(韓族)의 초기 고조선(古朝鮮) 역사에서도 불러진 ‘한 분 하나님’도 구약 창세기에서 말하는 인류 공통의 하나님이라는 신앙의 근거라 할 수 있겠다. 정리하면, 고조선 단군사화의 ‘환인-환웅’의 천신-천제는 인류조상의 하나님이요, 결코 ‘샤만적인 신’(神)이 아니다.
웅녀가 부른 하나님 ‘천신’(天神)
단군신화는 일연(一然)의 삼국유사 기이제이(紀異第二)의 역사문헌이다. 이는 고조선(왕검조선 王儉朝鮮) 건국시조 단군 출생에 대해 이웃 중국의 성인(聖人) 출생과 같이 신비한 현상을 표현하여 여느 사람과 다름을 말하여, 부명(符命) 즉 하늘이 천명(天命)을 주는 절차를 신화적(神話的)으로 서술한다. 그래서 우리는 신화를 천상과 지상 이분법(二分法)으로 해석하다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와 미신(迷信)으로 흘러 문헌의 원래의미를 왜곡(歪曲)하여 잘못된 사견적인 관행을 반복하면서 정체(停滯)된 보수론자(保守論者)의 완미(頑迷)의 우(愚)를 범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단군신화는 비현실적인 황당한 동화 같은 얘기가 아니라 건국시조를 신성시하여 건국의 정신과 목적을 종교적인 소명(召命)으로 선포 서술한 것이다.
고조선(단군사화) 건국사에는 하나님 환인을 믿는 그의 아들 환웅 족이 삼위태백에서 천명을 받고 신시(神市)에 와서 풍백, 우사와 운사 고위 귀족과 군 지휘자 측근과 3000명의 집단을 형성한 통치체제로 토착세력 곰 족과 결합하여 단군을 낳아 고조선을 건국한 역사를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고조선(단군사화,檀君史話)에 대한 이해는 단군교(檀君敎)나 대종교(大倧敎) 또는 샤만 무당(巫堂)과는 관계없이 한족(韓族) 고유의 정치사적인 하나님 통치(統治) 역사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떤 하나님이 누구를 통해 세상을 다스리도록 한 것인가 ? 하나님 통치 역사와 관련된 단군사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첫째로 ‘환인’(桓因)과 환웅(桓雄)의 관계와 그의 신화적인 서술을 구약성서적인 관점에서 해석, 해명 할 필요가 있다. 단군사화 연구가들의 견해를 종합해 보면, 환인은 창조주에 가까운 원시적인 유일신에 해당한다. 그런데 환인의 뜻은 어떤가를 물으면, 그것은 “예전에 환인이 있어 아들들 중에 환웅이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하여 구하니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아시고,...인간을 널리 유익하게 하는 것이라”는 어전회의의 ‘민주적인 대화’와 ‘홍익인간’정신을 위임하는 것이다. 이는 인류구원의 역사의식이라 하겠다.
구약에서 ‘하나님 통치’를 위해 다윗은 하나님에게서 소명 받은 신탁을 “야웨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시니,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다 (삼하 23:2 )로 선포하고,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꿈을 꾸며 하나님 물음과 솔로몬의 원망(願望)과 대답 형식 속에서 ‘지혜와 분별하는 마음을 받는다(왕상 3:5 -12). 호세아 예언자도 ”야웨께서 호세아와 함께 행한 말씀의 시작이다“(호 1:2)는 소명(召命)을 선포하는 절차는 환인 하나님께서 환웅을 통해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말씀하시는 것과 평행(平行) 된다. 역사적으로 고대국가는 제정일치 국가로서 하나님이 택하여 임명한 지도자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소명 받음을 ”지도자가 천상회의에서 하나님과 함께 의논하고 대화 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는다“는 신화적인 표현을 쓴다. 따라서 우리가 구약의 제왕이나 예언자들의 소명사화(사 6:1-13; 호 1:2; 렘 23:18; 삼하 23:2)를 문헌적으로 이해한다면, 단군사화는 고조선 건국에 대한 한족의 역사문헌(歷史文獻)이라는 것을 무리 없이 받아드릴 수 있겠다.
정리교정 : ‘단군신화’는 일본인의 명칭이니, 고조선(古朝鮮;일연, 삼국유사,141-147 쪽)으로 고쳐 부르며, ‘신화’부분은 구체적으로 ‘환웅소명’桓雄召命)으로 고쳐 부르는 것이 고조선 건국 역사(歷史)를 살리는 의미가 있겠다. 따라서 앞으로 단군신화는 ‘고조선’(건국 사)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 문헌적-역사적으로 합당하겠다.
환웅족의 하나님과 웅녀의 토착적 샤만 신
환웅과 환웅 족이 환인 하나님의 뜻을 받아 신시(神市)를 중심해서 먹고 살면서 병 치료를 받고 선악을 재판해 주는 도덕 윤리 사회에서 모든 합리적인 생활(재세이화,在世理化)의 규범을 배워 교양교육과 바른생활을 하는 동안, 토착민 곰 족은 호랑이 족과 동굴 동거 생활(원시혈거생활)을 하다가 자기들의 천하고 야만적인 생활 습관을 깨닫고 환웅 족의 건전하고 모범적인 바른 생활 즉 도덕정치를 사모하면서 교제하기를 원하게 된다. 사화는 곰 족과 호랑이 족이 환웅에게 ‘사람으로 변하기’를 간구함을 전하며, 쑥과 마늘을 주어 일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서 고행 금욕(금기를 지킴)하여 사람이 되도록 명령함과, 곰이 금기한지 21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됨을 전한다. 그 후 웅녀가 아이의 잉태를 간구함과 동시에 환웅과 혼인하여 단군 왕검을 낳는 이야기를 전 한다. 곰을 신성시하는 토템사회에서 ‘새사람으로 변화’와 고행-금욕의 단련 그리고 올바른 도덕생활을 간구함이 환웅과 웅녀의 결합에서 나타난다.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고조선(단군사화) 고기(古記云)는 1)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구하는 ’사회 윤리적인 역사형성‘이란 대전제 아래 고조선 통치역사를 말한다. 2) 환웅의 명령을 따라 쑥과 마늘을 먹고 21일간 욕망을 금욕, 고행하여 곰이 새사람 웅녀로 ’인간 변화‘를 한다. 3) 토착민 곰 족 웅녀가 ’천신을 숭배‘ 하는 유 이민 족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낳는다. 선사시대 유일하신 한분 하나님 신앙을 ’고조선‘ 고기(古記)에서 구체적으로 보는 사례(事例)이다. 단군사화(고조선) 연구가들은 고아시아 족의 기원전 3000-1000 년 시대 곰을 여자로 보는 샤만의 특징을 말한다(김정배 견해, 책명 생략). 단군왕검은 웅녀의 아들로서 모계, 모권적 사회의 추장이며 무군(巫君)으로서 주술(Magic) 의 뿌리를 갖고 있다(최남선, 유동식은 최남선 견해를 따라 단군이 무당이라 하며, 단군신화의 종교를 무교(巫敎)와 일치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서 유동식, 한국종교와 기독교, 1965(1973년),19-23, 특히 20 쪽 참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환인-환웅 관계에서 환웅천왕이 신시를 중심해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통치이념 아래 합리적-모범적인 도덕정치를 하면서 토착민 곰 족과 융합하여 통치권이 웅녀의 아들 단군왕검에게 계승된 후 천신신앙이 샤만적인 신앙과 혼재(混在)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유 이민 셈 족계 아브람의 유일신 하나님의 계시 신앙(창 12:1-3)이 카나안 인 이스라엘인의 카나안 주술신앙과 섞여, 카나안 인이 스스로 카나안 풍습과 제도를 배척하면서 유 이민의 유일신 신앙을 찾는 역사와 같다(창 12:4-8 참조; 겔 16:3). 환웅이 토착민 웅녀와 결합하기 이전 환웅천왕의 신시 통치 시대와 웅녀와 결합한 후 단군왕검 통치시대가 유일신 하나님 신앙과 샤만적인 잡신의 주술신앙의 긴장관계가 생긴 것을 보게 된다. 지금도 흔히 단군신화의 ‘홍익인간’을 제창하는 데, 다른 한편 단군은 무당이라는 기죽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인이 고뇌하는 ‘유일신 하나님 신앙’의 문제이다. 하나님의 율법과 예수의 십자가 신앙을 따르면서, 그보다 물질추구의 기복적(祈福的 )인 입신양명(立身揚名)을 더 갈망하는 신앙이다. 서로들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의 이타적인 희생이라고 하면서, 물질추구의 축복을 샤만 무당 종교라 흉을 보지만, 남이 모르는 사이 슬그머니 샤만적인 축복을 챙기고 상대방에게 십자가의 희생을 입버릇처럼 외친다. 민족적인 이율배반적인 습관이 불신과 분열을 고착시키고 있다. 고도의 윤리적인 신앙이 저급한 샤만 종교에 삼켜진 가운데, 기독교의 선교와 교회 부흥을 열망한다. 일찍이 1960년대에 유동식 교수(유동식, 한국종교와 기독교, 1965, 33-39 쪽 참조)는 단군신화의 최고 주신 하나님이 기독교의 하나님을 손쉽게 이해하는 근거가 된다고 했다. 샤마니즘의 인간 불행 자각역과 구원의 모색을 지적하였다. 이런 신앙이 기독교 신앙과 합치되어 교회 부흥회를 뜨겁게 한다. 그럼에도 유동식 교수는 샤만적인 한국인의 성격이 기독교와 배치되는 것을 4 가지로 지목한다: 1) 샤만적인 잡신과 귀신을 데리고 어려운 일은 남에게 맡긴다, 2)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와 영력을 샤만의 주술과 혼동하고 있다, 3) 믿음으로 변화된 새로운 존재가 못된 채 기복적-의타주의에 안주한다, 4) 정체된 보수주의와 변화를 싫어하는 폐쇄성이다. 이런 성향이 고조선(단군사화)의 토착민 곰족의 샤만적인 근성이요, 부끄러운 치욕적인 것이다. 이는 카나안 족 이스라엘의 성격과 합치된다. 이런 치욕적인 성향을 배척하려고 셈족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그의 계시를 믿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는 복은 개인만의 복이 아니라 모든 종족들의 복이 된다(창 12 :2-3).
그럼에도 우리 조상은 선사시대 기원전 3000년 경 부터 단군사화의 환인-환웅 통치에서 샤만적인 것과 구별되는 세계관과 고도의 도덕-윤리적인 합리적인 사회상을 제시하고, 새로운 인간 변화의 교육을 제시하는 문헌을 전하고 있다. 따라서 한족(韓族)에게는 유일 신 하나님 신앙에 근거한 홍익인간 사상과 도덕-윤리적인 모범적인 인간상이 있어(단군신화 기이 편) 샤만적인 주술을 항구적으로 경계 배척하는 신앙은 구약 셈계 아브라함의 유일신 하나님(창 12:1-3)과 카나안 인 이스라엘의 다신적인 주술 신앙과 하나님 아내가 됨(겔 16:3, 4-14 참조)과 비교 된다 :
고조선(단군사화)과 구약성경 창 4:26 ; 12장 ; 겔 16장 평행문 비교와 ‘ 홍익인간과 모든 족속의 복’(福)의 해석
본문 비교 : 환웅의 소명(단군사화)과 웅녀와 결혼
1) 고기(古記):환인이 환웅에게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과 통치권 부여, 환웅이 신시에서 풍백, 우사, 운사와 함께 백성생활을 통치, 도덕-윤리, 합리적인 모범생활 교육, 환웅이 웅녀에게 금욕 고행 명령을 내린 후 사람이 된 웅녀의 간구를 듣고 환웅이 결혼하여 단군을 낳음,
아브람의 소명 계시와 하나님 아내 카나안 이스라엘
2) 창세기 12:1-3:야웨가 아브람에게 그가 모든 족속의 복(베라카, Segnen, blessing)이 되어 복을 얻게 하며, 카나안 땅과 큰 민족 약속을 계시함, 12:6-8:아브람의 카나안 이주, 베트엘과 아이 사이에 제단을 설립하고 야웨 이름을 부름, 겔 16:3, 4-14:카나안 인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아내가 됨
위에 제시된 환웅소명과 환웅의 웅녀와의 결혼이 유이민 족의 토착민과 결합이라면, 유이민 아브람이 받은 하나님의 소명계시는 다신적-풍요종교를 신봉한 토착민 카나안 이스라엘의 결합과 비교된다. 그럼 양 본문(兩本文)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 그는 유이민을 통한 토착민이 받는 ‘하나님의 복과 구원’에 있다고 하겠다.
환웅 소명(召命)의 홍익인간(弘益人間)과 모든 족속이 아브람에게 받는 복(福)
우리는 ‘고조선’(단군신화)에서 ‘홍익인간’을 들어도 대강 무슨 얘기인줄 듣고 넘기지만, 속 깊은 뜻은 모르는 것 같다. 또 창세기(4:26)에 애노쉬가 이스라엘의 조상인지 인류 조상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더욱이 그가 야웨 이름을 처음 불렀는지 알지 못하며, 야웨가 어떤 분인지도 모른다. ‘홍익인간’이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다고는 알지만, 누가 한말인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상세히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창세기에서 야웨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복을 주고, 모든 족속이 아브람에게서 복을 얻는다는 말씀은 신앙으로 받아드린다. 이런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신 복은 어떤 복인가? 그것은 잘 먹고 잘사는 복이려니 한다. 그런데 홍익인간의 ‘이롭게 한다’는 것이 바로 모든 족속(인간)이 아브람에게서 받는 복과 같은 의미이다. 왜냐하면 인류조상의 하나님이 단군사화나 창세기의 선사시대 세상 인간에게 행하신 ‘익’(益, 이에 대해서 漢韓大辭典, 학원출판공사, 1993년, 1036쪽, 더할, 넉넉할 益, 정직하고 도덕을 지키며 지식이 있는 사람 益者)과 ‘복’(福, 이에 대해서 게제니우스 사전, 117-118 쪽, 베라카, 행복과 선물을 주다, 유익과 이익을 기대하다, 재난을 물리치다; 창 12:2-3 ; 18:18; 사 19:24참조)은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막연히 고대 신화나 성서 얘기에서 추상적으로 들어 왔던 환인 천신(天神)과 야웨 하나님은 인류조상의 하나님이요, 선사시대에도 그 당시 인간들을 위해서 도움을 주셨음을 지혜인간(사피엔스 호모)이 전한 것이다. 따라서 단군사화와 창세기(4 :26)는 공통적으로 인류 조상의 하나님을 고백하며, 단군사화와 창12:1-3절은 홍익인간과 아브람의 복을 선포한다. 위에서 우리는 기원전 3000-1000년 선사시대에 천신 족 환웅과 곰 족인 샤만족 웅녀가 결합하는 단군사화 역사를 읽었다. 천신 족은 이미 도덕적-윤리적인 모범생활을 하며 인간세상을 널리 유익하게 하는 반면, 토착민 곰 족은 샤만적인 저급한 생활을 하다가 환웅의 명령을 순종하여 금욕, 고행을 수행하고 새 인간이 된 웅녀 족이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천신 족과 샤만 웅녀 족의 결합은 이제 고등 윤리종교와 높은 인격의 새 인간이면서 동시에 토착적인 샤만 근성의 저급한 관습으로 내면의 갈등과 이율배반적인 충돌을 빚는 생활에 노출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군신화(사화)를 연구한 학자들은 웅녀의 아들 단군 이전에 환웅-웅녀 관계에서 말하는 ‘홍익인간’보다는 기원전 2333년 샤만족 웅녀의 아들 단군이후 한족(韓族)의 ‘샤만적 경향’에 비중을 두고 ‘샤만적 전통’에서 단군신화와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와 조선, 현 대한민국 역사를 해석해 오는 것 같다(예를 들면 최남선, 유동식 등). 이는 한족이 역사적으로 중국, 몽고, 만주(청나라)와 일본에게 공격과 수탈의 대상이었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럼에도 한족(韓族)은 선사시대의 환인(桓因) 천신(天神)인 한 분 유일신의 신앙과 홍익인간 정신의 전통을 가지고 항구적으로 ‘웅녀족의 새 인간’이 되려는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 1910 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합병되는 망국역사에서도 기독교 선교사가 전하는 성서의 유일신 하나님을 고조선 건국의 단군사화의 천신 하나님 사상에 근거해서 쉽게 받아드린 것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셈계 아브라함의 유일신을 믿으면서도 카나안 토착적인 바알 신 다신 론 적인 관습에 매여 있는 것처럼, 한족은 단군사화의 천신 유일신 ‘하느님’(기독교적 하나님) 신앙이 있으면서 토착적인 ‘샤만적 신앙’의 근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두 성분은 무종교인(無宗敎人)이든 기독교인이든 환웅-웅녀의 결합에서 ‘새 인간’이 되려는 의식에서 극복될 것이며, 세계와 역사의 도전(挑戰)에서도 항구적으로 단군사화의 본질을 성찰하면서 철저히 ‘하나님-예수’신앙을 생활화 하는 데에서 곧 하나님 신앙 안에서 새사람이 되려는 웅녀의 기도와 간구가 합치하는 데서 변화되는 성공적인 미래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