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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박순경 교수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박순경교수 91세 출판기념 이화대 삼봉홀 2014년 11월 3일)

방석종 2021. 2. 17. 20:17

서평(書評)

 

1권 구약편: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박순경 지음)

 

2014113

방석종(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박순경 교수님(1923년생)710쪽에 달하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은 성서신학적으로 성경 본문을 기초적으로 충실하게 다루면서 한글 번역 성경을 영독어 성경과 마소라 70인역과 비교 검증하고, 영어 역과 한글 번역에 빠진 외경서(루터역과 천주교 성경에는 포함됨)를 정경과 힘께 다루었으며, 어의론적 해석(예 히브리어 루아흐)은 다의적인 양면을 유기적인 몸체의 의미를 존중하면서도, 창조주, 구원자의 행동과 관련을 맺으며, 저자의 일관된 관점을 골라 증언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사를 혁명사로 개념화 하여 삼위 일체 하나님의 시간을 증언하고 있다. 특히 시간 개념을 역사의 불의한 구조를 미래, ()로운 나라로 변혁하는 은혜의 계기로 말하면서(본서 229) 종말론적인 인류 구원사를 줄기차게 증언한다. 구약성서의 예언 전승에 비중을 두면서 그의 주제는 포로기-포로후기의 역사해석 전승인 신명기사가적(Dtr. Deuteronomisten) 인 해석에 근거해서 일관된 관점에서 제사장 국가 형태의 하나님의 혁명사를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 있다. 이런 삼위일체 하나님은 문명사적으로 수메르의 삼위일체 구조와 동이족의 환웅시대의 삼일신고(三一神誥, 3이 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원리지만, 이런 유일신은 우주자연과 하나, 즉 신으로서 범신론과 인간과 동일화 될 수 있는 위험이 있음, 본서 683 )의 삼위일체 상제 개념과 비교를 보여준다. 하나님 야웨의 혁명적 구원사의 출발은 출애굽 역사의 노예해방이 기점이 되며, 두 번째 단계는 카나안 정복전통(점유, 이주전통), 셋째는 판관기(사사기) 시대의 암픽티오니(지파동맹체) 공동체, 넷째는 다윗왕국과 예루살렘성전 중심의 선한 통치자들 히스키야, 요시야 왕과 반() 야웨 신앙의 악의 왕 므낫세의 횡포 그리고 남북 왕국의 멸망 전후 10세기 엘리야/엘리사 예언자, 8세기 호세아, 아모스, 이사야, 7/6세기 예레미야, 미카, 포로기-포로후기 제 2 이사야 그리고 기원전 4-기원 1세기 제 3 이사야, 다니엘, 외경서 에녹서, , 4 에즈라서에 걸쳐 하나님의 존재 양식인 시간의 원천, 즉 태초의 창조, 미래 시간의 종말시간(본서 642 )을 역사의 존속으로, 곧 저자 증언의 반복 후렴구인 하나님의 자유와 은혜에 달린 시간으로 증언한다. 강대국 통치자들이 자신을 절대 신으로 등극하여 주변백성들을 노예화하는 기원 전 13세기 역사 속에서 히브리 노예집단이 탈출한 출애굽이야말로 참 노예해방이요, 하나님의 혁명이다. 저자는 이런 혁명이 가나안 농민 혁명으로 전개되며, 부족지파 동맹을 형성하여 가나안 지배자들을 대항 전투를 한다는 것이다(Mendenhall. Gottwald의 가설을 수용). 판관들(사사들)은 왕 없이 야웨 하나님 왕()을 중심한 제사장 국가 형태의 통치자들에 해당한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왕권을 허용하지만, 왕권의 부정적인 측면을 제기한다. 저자는 고대 왕권이 동이족의 왕권에서 비롯했으며, 이스라엘 왕권이 수메르-동이족 왕권과 혼동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어느 왕권도 하나님 심판 아래 있으며, 결국 하나님 혁명에서 심판과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원전 10세기 다윗왕권은 하나님 혁명 역사의 좋은 모델이 된다. 다윗이 회개하며,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기초하여 모세의 십계명 법궤를 성전에 옮겨 놓고, 남북을 공동통치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해서 선정을 베푼 다윗, 히스키야, 요시야는 신명기사가 학파에 의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기원 전 9-8세기에 이르러 앗수르 정복 통치 아래서 이스라엘 왕들은 하나님의 계약을 어기고 악정(惡政)을 하여, 백성과 예언자들의 경고를 받는다. 야웨는 백성 통치자의 악을 앗수르와 바빌론의 악을 들어서 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혁명세력이 아니다. 백성이 바라는 야웨의 날은 심판의 날, 어둠, 혁명의 날로 선포되었다. 이스라엘 주변 강대국이 야웨의 도구로 쓰이는 것은 야웨 심판을 위해서이지, 그들의 심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 앗수르 바빌론, 페르샤, 알랙산더 제국과 안티오쿠스 IV세 로마 제국은 하나님 심판 아래서 멸망되며, 기원 전 6세기 일련의 이방예언 신탁(, , , 겔 등)은 강대국들도 야웨 심판을 받게 된다. 그 중에 야웨는 이스라엘 한계를 넘어서 이방 왕 코래쉬(페르샤 왕)를 기름 부은 메시야로 임명하여 전권을 맡겨 특수 임무를 수행하게 한다. 이는 고대 다윗왕국과 분리된다. 다윗을 통했던 일이 이방 이교도 왕 코래쉬를 통해서 자유와 해방이 실현된다. 나탄 예언의 영원한 다윗 왕좌의 영속성의 약속(삼하 7 : 13-14참조)그들의 소유가 아니라 신적인 자유와 의 그리고 은혜로 야웨의 심판 아래서 신적인 동력, 즉 구원사적인 종말적인 미래희망으로 열려졌다. 따라서 이스라엘 - 유다도 모든 왕국들의 대두와 멸망을 넘어서 새로운 혁명적 미래의 나라를 대망할 수밖에 없다(본서 329-330 ).

포로후기 신명기사가적인 역사해석은 구원사를 대표하는 역사요, 왕권중심의 백성지배를 계약사회 공동체의 평등성을 통해 노예해방, 인간 해방을 말하며, 민중중심의 평등사회, 곧 혁명역사의 표본이다. 예언자들의 역사해석은 신명기사가의 역사해석에 와서 하나님 미래행위에 모든 이방인들이 주목하여 하나님을 인식하게 된다. 그럼에도 신명기 사가는 제사장직의 정신이나 공적인 국가적인 영역의 사상에 뿌리를 두지 않았다(M. Noth). 그들은 이스라엘 구원사적 역사신앙을 그들의 전유물이 아닌 세계의 구원사적 의미와 미래희망을 말한다. 따라서 이제 구원사적인 미래희망은 유다를 넘어서 궁극적인 미래로부터 새로운 종말적인 나라에 대한 대망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본서 328). 이는 야웨 백성으로서 남은 자들의 한족(韓族)과도 연관된다. 고대 환국과 고조선의 후예인 우리 역사의식은 이스라엘의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한 출애굽과 가나안 땅의 혁명사와 동일선상에 놓일 수 있다(본서 705-706). 폰 라트는 전도서에서 ()도 불확실하고(7:15; 8:14이하), ()도 불확실하며(7:15; 8:14이하), 오는 것(미래)은 불확실하다(3:19; 8:7). 오로지 모든 사람 순결한자 불결한자 구별 없이 기다리는 죽음만이 확실할 뿐이다”(9:1-18). 다만 영()의 노고만 있으며, 삶을 극복할 수 없다는 구절로 (구약성서신학 제1권의 회의’(懷疑), 허혁 역, 451-457)끝을 맺고 있다. 그러나 저자 박순경 교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자유와 은혜를 시인하는 표식이 유한한 시간성이요, ...은혜로운 죽음은 살아있는 자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미래구원과 그의 영원한 나라로 부활의 희망 안에서 여전히 시간성 안에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본서 709; 서평자 보충 단12:2 “땅의 티끌 가운데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의 주검이... 그의 불이 꺼지지 않은 채 모든 세대 사람들에게 저주와 역겨움이 되리라”(66:24) 참조). 박순경 교수는 예언서, 신명기사가의 역사 해석을 성문서의 무지의 지혜에 맡기지 않고, 묵시론적인 종말론으로 연결하여 예수의 세계적-우주적인 통치권의 지평을 열어 놓을 것 같다.

저자는 유한한 시간성 안에 범죄의 역사를 말하며, 이를 묵시록적인 종말론의 최후심판을 증언하며, 마르크스-엥겔스가 지나친 하나님의 미래의 시간은 구원과 최후심판으로 결정됨을 죽음을 넘어선 부활로 고백한다.

 

 

서평-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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