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학
방석종 교수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최근 동북아 정세에서 나타나는 지각변동이 21세기 평화의 기적으로 이어질 것 같다. 과거 영국이 팔레스틴 땅 서안지구 일부를 이스라엘 디아스포라에게 인양시켜 영광스러운 탈출을 이루어냈고, 또한 미국이 아주 최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은 중ㆍ소 군사력을 능가하는 미국의 군사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1) 공산전체주의 위협 아래 약소국을 자유민주주 영토화, 2) 강대국 안에 강점된 약소국 영토를 찾아 약소국에 귀속시킴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국은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얹고, 대법원장 앞에서 대통령 권한을 서약하는 자유민주의 신정통치의 권능 때문이기도 하다.
보라! 간음죄로 고발당한 다윗이 백성들 앞에서 통회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북왕국 이스라엘 장로들이 헤브론으로 와서 다윗에게 인격연합 군합국통치를 맡긴 후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면서 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덩실 덩실 춤을 추었던 것은 법궤 안에 이집트 종살이 400년 후 시내산에서 하나님 십계명을 받아 자유를 얻어 애굽으로부터 탈출하고, 이제 하나님 통치로 독립한 하나님 백성의 통치자가 된 기쁨 때문에 백성들과 섞여 춤을 추었던 것이다. 북왕국의 왕 사울이 죽은 후 남왕국 유다 지파의 다윗이 블레셋 군대를 물리치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은 다윗은 북이스라엘이나 남유다가 공통적으로 1) 이집트세력에서,즉 노예근성에서 벗어난 탈이집트 출애굽 정신, 2) 시내산 십계명 신앙, 3) 금송아지 숭배의 왕권통치 거부, 4) 히브리 노예집단의 자유민주영토 정착, 5) 하나님 계명을 지키는 신정통치로 이스라엘을 통일시켰다.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 위에 자유민주의 신정통치력이 21세기에 이르러 험난한 공산당 세력을 무력하게 하는 날이 왔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시는 만세의 국가 자손과 함께하는 창조주 찬양이다. 이는 시편에 “천지는 없어저도 주는 영존하시고 그것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의 연대는 영원하고 주의 자손이 주의 앞에 굳게 서리이다(시 102:25-28)”라는 창조주 찬양과 공통점이 있다.
조선족의 하나님 사상은 고조선역사의 환인 하나님이 환웅에게 삼위태백에서 홍익인간을 계시하신 후 신시로 파송하여 5부 체제 백성을 먹여주고, 생명을 존중하고, 병을 고쳐주고, 죄를 형벌하며, 송사는 선과 악을 분별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사명을 주셨다.
즉, 한 나라의 통치는 정치적인 힘과 군사력 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깨닫고 이를 잘 실현해 나가는 데에 있는 것이다. 통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통일은 단순히 경제적인 이익과 힘을 확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홍익인간의 이상향을 실현하고, 이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바로 서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통일 신학과 통일신학자
통일은 정치적 또는 역사적인 의미의 국가적인 변화이다. 1945년 이후 남쪽 대한민국 북쪽 조선인민공화국이 분단되어 38선을 서로 넘지 못하고 있는 데에서 한반도 백성은 동족끼리 서로 자유롭게 합쳐져 살 수 있는 것을 통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 땅의 백성들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통일의 방향성 보다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체제의 통일인가?” 아니면 “북조선의 전체주의 체제의 통일인가?”라는 노골적인 이념 체제의 갈등에만 빠져 있는 듯하다. 국민들은 그런 이념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건만, 정치정당체제가 ‘통일’을 자신들의 전유물인양 정권에 비중을 두고 엎치락뒤치락할 뿐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통일은 염두 두지 않고 있는 듯하다.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이는 정치로 뛰는 사람들이 국민의 나라보다 정치 집단과 정당에 집착하여 정권장악에 수단ㆍ방법을 가리지 않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여당, 야당의 뚜렷한 정책노선이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주사파 누룩이 안 퍼진 데가 없다. 북조선이 대한민국보다 경제적으로 50배나 뒤떨어져 굶으며 병들고 곤핍하여 인도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고 친북노선에 있다. 무조건 도와야 한다는 건 선한 사마리아 인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 국가 국민이지만, 민족적으로는 조선족인 동족이다. 북조선에 가족을 두고 대한민국으로 넘어왔으면 탈북민이요, 이산가족이다. 그러나 북조선 인민의 인도주의적인 정책에 북조선 당원들이 침투하여 섞여서 있는 통에 이적행위를 모면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햇볕정책바람에 저자세로 북조선 국민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원을 만나면서 비핵화 정책의 갑론을박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북조선 공산당은 자유민주를 전복하는 기회를 삼는데 주력하고 있지만. 그런 행위를 진보주의로 쳐주고 있다. 대한민국 기독교인들과 목회자들은 나름대로 성경말씀대로 공산당에 대립하는 설교를 열심히 하고 있다. 나서는 분들이 다섯 손가락으로 셀 뿐이다. 통일신학을 위해 나서질 않는 눈치이다. 그래도 1950년 대 자유당 말기때는 이승만 독재를 비판하다가 감옥에 투옥되거나 감시받는 자유민주투사들이 많았다.
지금은 중국 공산당이 개혁개방정치를 하면서 교육적으로는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우게 하면서 공산화 공정을 할 정도로 조직적 이념적으로 우리 민주사회를 공산 진보주의와 병합시키려는 데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국민들이 말은 안하고 있지만, 반독립적인 행동을 안 하는게 아니다. 중국어는 직업과 관계에서 배울 뿐이다. 영어로 굿모닝 인사는 해도, 길거리에서 중국어로 ‘니 하오’ 인사하는 것을 듣는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역사적으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동족이지만, 남유다 지파와 북이스라엘 지파들은 앙숙, 철천지 원수 관계로 동선을 피하면서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왕상 3:11-12에서 “솔로몬은 장수 부귀영화나 적에 대한 복수를 구하지 않고,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라는 계시의 말씀이 있다. 이는 고조선역사 기이편에 환인과 함께 있던 환웅이 세상을 탐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환인이 5부 체제 중 마지막에 주선악, 즉 선과 악을 판단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마음에 일치하는 신정통치라 하겠다.
이처럼 성서와 단군사화는 모두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이념 관계를 초월한 연합을 강조하고 있다. 통일은 어느 일부 정치 집단의 일부로 작용해서는 안 되며, 모든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신정 통치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박순경 신학의 새로운 것
박순경 교수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사를 하나님 혁명사로 개념화한 것은 세상왕권이나 우주적 왕권이 인간이나 그 어떤 세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 통치 아래 있음을 확정한 것이다. 이런 혁명사는 이스라엘 왕권이 동이족의 왕권과 혼동되는 것을 지적함과 동시에 어느 왕권이나 피조체의 왕권도 하나님 혁명에서 심판과 구원이 주어진다는 데서 박순경의 신학은 삼위일체의 신정통치(Theokratie)를 확정하고 있다.
문제는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왕권이 동이족 왕권과 혼동되고, 북조선 인민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 혼동하고, 공산혁명이 하나님 혁명과 혼동하는 변론 상황이다.
이를테면, 복음서의 인자(人子)는 중국의 현인들 공자(孔子), 맹자(孟子), 순자(荀子)의 아들 자(子)와 같은 칭호로 볼 수 있는 것이라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위치가 중국의 제왕 천자, 일본의 천조대신, 고조선 역사에서 환웅 서자가 환인 하나님의 아들로 신격화되는 것에서 하나님의 유일신이 다극화ㆍ다원화 되는 것과 혼동됨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의 강대국들이 오늘도 자기들의 국왕들에게 신권적 이념을 부여하여 약소국들을 강압하는 데서 피조물의 영웅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유혹이 인류역사의 비극을 만들고 있다. 박순경 신학은 이를 유한한 시간성 안에 범죄의 역사요, 최후심판의 대상으로 증언하면서, 죽음을 넘어선, 즉 예수의 우주적 통치의 지평에 나타나는 부활의 세계를 증언한다. 인간 주체의 영웅들이 걸려 넘어지는 시험하는 자들의 3가지 시험들을 이긴 인자 예수 (마 4: 1-11 참조)를 하나님 혁명사에서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