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사화의 곰과 호랑이
- 강대국들의 전쟁역사와 고조선 영토사
중국 서북 삼위태백 돈황에서 동북 홍산-북경-집안을 중심하여
예레미야는 하나님 앞에 인간마음을 최대핵심으로 증언하듯이 고조선인 사화도 인간마음의 이중성을 인면수심으로 우화형식으로 증언합니다. 민족들의 탐심과 전쟁은 잔인할 대로 잔혹한 것을 맹수들의 공격과 살육현장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목불인견입니다. 바로 호랑이 곰 얘기가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얼굴은 사람이나 마음은 짐승입니다. 두고 봐도 불변의 짐승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전쟁범죄' 현장이 단군사화의 호랑이 ㆍ 곰이다. 강대국 군사의 잔학함과 불법이 용맹과 승리로 미화되는 참상이 아닙니까? 호랑이 같은 비인간적인 강대국 민족들이 비공격적인 곰과 같은 약소민족 속으로 파고 들어 온갖 잔학한 범죄의 이빨로 탐욕을 채우는 전쟁현장 속에 호랑이와 곰이 전쟁에 지쳐 평화를 공약하지만 강대국은 전의와 살육의 짐승 마음 수심을 감추고 잠깐 모습을 감추고 숲으로 몸을 가리우지만 곰은 쑥과 마늘 채식을 먹으며 인고와 절제를 통해 인도적인 평화로 돌아선다. 이것이 바로 널리 인간을 구하고 유익하게 함입니다. 새들도 해조와 익조가 있어 인간 곁에 있듯이 말이다. 해충과 익충이 있듯이 말입니다. 해충은 병을 퍼뜨리나 익조는 해충을 잡아 냅니다.
인간도 야만적인 공격을 일삼는 전쟁민족이 있다면 선하게 평화스럽게 서로 도와주며 살아가는 평화민족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래서 살육적인 카인과 곡물을 갖다 바치는 아벨을 아담 인간 인류의 자손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보면 강대국일수록 대륙을 점령하는 슬라브 라틴계 민족이 탐욕적인 반면, 동이족 조선족은 친화적이라 하겠습니다. 내것 네것 없이 서로 나누며 동고동락하는 민족이 있습니다. 인간을 유익하게 하는 익조와 같은 제비민족에게 홍익인간 정신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성경을 중심에 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전쟁을 막으며 평화를 지려는 유익한 인류의 군단이 있다면, 공산독재로 분쟁을 일으켜 전쟁을 일으키는 해악의 테러집단 마피아 조직의 통치기구입니다.
침략적인 국민은 세계대전과 연결됩니다. 일본, 독일, 그리고 전쟁 중 공산당이 되어 역공하는 중공 소련도 세계대전 세계 공산당으로 1950년 6.25 한국전쟁과 연결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전쟁 방어국이라 하겠습니다. 그 반면 중공과 러시아는 일시 평화와 경제를 내세우지만 인간 ㆍ민족 중심의 독재제국을 사회주의로 주창합니다 공산화 제국으로 말입니다. 히틀러 나치주의를 공산주의로 바꾸어 일면 성공한듯 보입니다. 이는 세계중심이 아니라 자국중심에 집착한 공산주의 제국이라 하겠습니다. 과연 세계주의 사해 박애 주의는 누구일까요? 이는 종교화된 예수보다는 복음서의 예수의 삶에서 찾아야 하겠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예수 십자가로만 떠넘기는 생각이 예수를 종교화 하는 것입니다.
단군사화에서 환웅이 세상탐구를 한다면, 그는 정치군사적 힘을 가진 군왕 천황입니다. 세상을 탐하여 구한다면, 어떻게? 정치적-군사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전쟁을 하겠지요. 그럼 이웃 나라는 적수가 되어 대적하여 전쟁을 하여 어느 한 쪽이 패전하고 수많은 인명이 죽어 희생이 되어 적과 원수로 보복의 역사가 이어지고 어느 한쪽이 식민이 되겠지요. 다른 이웃 나라 민족에게 침공자는 전쟁 민족으로 인간 관계를 적대 관계로 피해의식을 갖고 긴장 ㆍ 복수의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겠고 두려움 공포로 평화를 잊고 하나님 형상을 상실한 비인간적-짐승의 약육강식의 세상을 원망하면서 살아가겠지요. 우리 후손들이 모르는 고대 조상들의 잊혀진 전쟁역사의 현장을 더듬어 기억하게 되겠습니다.
그런 과거 전쟁 속에서 기록된 것이 바로 단군 사화의 ‘환웅의 세상 탐구’로만 읽으니 난해하겠지요. 무사가 칼을 들고 세상을 탐하여 차지하려고 하는 전투준비 장면을 환웅 무사적 군왕의 전투와 연관 지어 기원전 30세기 국가들을 추상하여 봅니다.
기원전후 고조선 주변 강대국 군주의 침공식민 야욕의 현장을 목격한 환웅천왕 위 하나님이 인류평화를 위한 계시 곧 홍익인간 정신이 촉구된 전쟁 역사의 현장을 단군사화에서 봅니다. 주곡 전쟁으로 농사를 못 지어 흉년이 들고, 주명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이 목숨을 잃게 되니 생명을 아끼고, 주병 전쟁 속 부상병과 역병의 전파로 질병을 관리하고, 주형 전쟁 중 성에 굶주린 병사들의 성폭력 법을 무시한 난장판 속에 온갖 범죄 행위를 가려서 군법재판에 회부하여 피해를 줄이고, 법을 지켜 법에 따라 선악을 엄히 가려서 부당한 판결이 없도록 그리고 억울함이 없이 평등한 판결을 하여 자국인과 타국인을 인간평등정신에 입각하여 판결하며 신정통치를 수행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나라를 천명하는 것이 고조선 건국의 뜻이라 하겠습니다.
홍익인간은 인간의 '해로운 존재'가 아니라 '이로운 존재'를 강조 천명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환웅은 세상을 탐하였을까요? 환웅의 탐심은 평화 회복보다는 영토 확장의 전쟁입니다. 이런 범죄는 어디에 근거합니까?
요한복음 8:44과 연결해서 환웅의 탐심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너희의 아비 마귀의 출생자로 아비의 인간적 욕심을 행하니 곧 진리에 서지 못하는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단군사화를 보면, 환인 하나님 곁에 있던 환웅이 '세상탐구'는 환웅이 인간 욕심 대로 자기 맘대로 세상을 탐하였지만, 그것은 분쟁과 전쟁 없이는 구하기 힘든 것이요. 세상을 해치고 망하게 하는 짓이기 때문에 그러지 말고 민족의 울타리를 벗겨낸 널리 인간 인류를 이롭게 하는 유익한 통치 자가 될 것을 명하여 5부 체제 곧 주곡 먹여주고, 주명 생명을 존중하며, 주병 병을 고쳐주되, 주형 범죄는 벌을 주고, 주선악 재판은 선악을 가려서 행하도록 신정 통치를 명령한 계시의 통치를 가르친 역사가 있습니다.
철부지 아이들이 옛날얘기 속 곰과 사람이 되는 이야기, 웅녀와 환웅의 아들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던 신화에 군대장군이 있어 전쟁무장으로 전쟁을 하여 승전하는 이야기가 없어 허전할 뿐만 아니라 자랑으로 내놓을 것이 없다고들 하였지만 알고 보면, 단군신화는 조상들의 전쟁 이야기가 아닙니다. 조상은 환웅이고 환웅 위는 하느님 환인인데 환웅의 아버지가 하느님이고, 하느님 곁에 환웅은 천왕인데 풍백 우사 운사 즉, 바람 비 구름을 부리는 용장으로 인간 세상을 인간 탐욕으로 정복하려는 군주였지만, 이는 사람을 죽이고 굶기고 영토를 정복하는 생명을 희생하면서 영토확장에 징집 배출되어 싸우는 기계요, 부상과 죽음은 홀대하고 전쟁범죄는 아랑곳 하지 않고 포로 노예 축첩으로 전쟁의 전리품으로 인간 대우는 무시되고 노획물로 환산되는 존재일 뿐, 인륜 도덕과 사회의 범법은 이긴 자가 좋은 대로 행세하고 법치는 팽개치는 세상에서 약자 가난하고 힘없는 자만 죄인이요, 선악의 구별이 없었던 인면수심의 공포와 협박의 사슬에 수족이 묶여 있던 무법천지 야만국가들 속에서 호랑이는 도망가고 곰만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인내 절제 고행을 겪으며 인간이 되었으니 그가 바로 웅녀요, 인간세상을 탐욕으로 정복하는 걸 죄로 여기지 않고 날뛰다가 환인 하느님 아버지의 부르심을 듣고 전쟁을 일삼는 민족들의 울타리를 벗어나 짐승의 옷을 벗고 인간세상을 바르게 다스릴 줄 알게 되었으니 이것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수장이었습니다.
그 후로 환웅이 하느님 계시를 받은 아들로 신시에 와서 바람 비 구름을 부리며 3000명을 거느리며 가르치는 중 곰 부족 중 인간다운 존재인 여인을 만났으니 이가 웅녀요 환웅은 인간 세상을 정복하려던 야욕을 접고 웅녀와 평화조약을 맺고 아들을 낳으니 단군이라 칭하였습니다. 환웅의 이중성은 무엇입니까? 하나는 세상을 정복하려는 죄성(요한복음 8:44 참조), 거짓말의 아비요, 하나는 하느님 환인의 계시를 순종하는 홍익인간의 사명을 수행하여 신시에 거주하는 환웅천왕의 통치력입니다. 죄의 악성과 순종의 선성이 환웅의 이중성이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세상은 거짓말의 아비로 사는 호랑이 민족과 세상을 차지 하려다가 하느님 계시 홍익인간 명령을 듣고 순종하는 이로운 존재의 민족이 섞여서 전쟁위협과 전쟁을 수행하면서 싸우고 죽고 굶으며 부상당하고 범죄하나 법을 지켜 판결을 받으며 5부체제 신정통치의 시민이 되는 신정통치체제와 자유ㆍ민주의 인도적인 세계시민의 국가를 확장해 나간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