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학

[한규준 목사] 환인 백성의 나라와 홍익인간 논평

방석종 2017. 1. 12. 17:53

논평 : 환인 백성의 나라와 홍익인간에 대하여

 

한규준 목사(새샘교회)

 

방석종 교수는 단군사화를 우리 민족의 성전(聖典)으로 삼아야 한다는 논자의 기존의 주장을 더 견고히 하려는 의도로 석유환인(昔有桓因)”에 대한 주석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

 

그런데 방 교수는 본격적으로 이 내용을 주장하기에 앞서 먼저 특히 1천만 기독교인의 부정적인 신화에 대한 인식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잘못된 인식은 문자주의 성서관에 입각한 몇몇 성경의 구절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그 원인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한 마디로 기독교인의 정통신앙을 고수하려는 무의식 속에는 종교를 초월하여 일반인으로서 마땅히 지니고 있어야 할 상식이나 역사의식이 없기 때문에 결국 신학부재와 탈 역사적 신앙에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적한 것이라 하겠다.

어쩌면 방석종 교수가 이렇게 절차탁마하며 기울이는 신학적 노력에 대해서도 대다수 사람들은 방관적 태도를 취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기독교신앙의 정통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염려하며 이단시하는 눈길로 바라보지 아니할까 본인은 생각한다.

 

첫 번째, 주목할 것은 방석종 교수의 석유환인주석은 종래의 해석방식을 뛰어넘어 우주의 기원 뿐 아니라 민족의 기원, 인간과 만물의 기원을 푸는 성경의 태초에”(1:1 בְּרֵאשִׁית 베레쉬트, 1:1 Ἐν ρχ엔 아르케)라는 단어와 동등한 위치에 놓고 이를 계시공식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옛날도 되지만, ‘처음’ ‘시초도 되므로 하느님과 관련된 은 성스러운 의미의 창세적인 시점 태초로 신학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은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최초의 신학적 시도로 고무적인 일이라고 본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기존의 해석인 역사학자 이병도의 역주와 정신문화연구원의 역주를 비교하였다.

 

두 번째, 이전 다른 학자들이 주장했던 석유환인서자환웅(昔有桓因庶子桓雄)”에 대한 주석은 환인의 서자인 환웅을 주어로 보았으나 이를 뒤집고 환인을 주어로 하여 태초에 환인이 있었다.” 끊고 한 호흡을 쉰 뒤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다음 구절 삭의천하 탐구인세의 주어가 됨을 성경어문비평 방식에 입각하여 새로운 제시를 한 것은 깜짝 놀랄만한 일이라고 본다. 이는 단군신화의 주체를 환웅과 단군으로 보려는 기존의 주장을 거슬러 올라가서 유일신 환인 하느님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민족을 돌보시는 하느님을 이스라엘을 택하신 보편적 야웨 하느님(4:26)과 같은 선상에 놓고 단군사화를 민족의 성전(聖典)으로 삼는다는 신앙적 해석을 의도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문은 현대어처럼 떼어 쓰기가 불분명하므로 한 문장을 놓고 여러 해석을 할 때가 있다. 광개토대왕의 비문을 놓고 한국, 중국. 일본이 저마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해석을 내놓는 예가 그런 이유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방석종 교수의 해석은 조금도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도리어 주어가 무리하게 길어진 환인의 서자 환웅이 태초에 계셨다보다는 태초에 환인이 계셨다. (그런데 그 환인의) 서자 환웅이 자주 하늘 아래 세상에 뜻을 두고~”라고 해석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본다.

 

이상과 같이 유일신 환인 하느님에 근거를 둔 환웅족은 홍익인간 실현을 이상으로 삼고 주나라 이후 중국의 침입의 역사 속에서 격랑의 시대를 살아왔다. 이러한 한민족의 역사는 단군사화에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주장한다. 지상의 군사 강대국이 아니라 성경의 평화의 하나님 나라 실현이 곧 이 민족의 이상이며 신앙의 목표임을 반복하여 논문은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