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과 구별된 한국인 하느님 사상 비평
이관수
성서역사연구회 주최 2017년 5월 26일 발제했던 방석종 교수님의 <무속과 구별된 한국인 하느님 사상>을 듣고 부족하지만 소감을 밝혀봅니다.
우선 주제 선정에서 방 교수님의 이 시대를 바라보는 깊은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예언자다운 선견지명이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오늘 우리가 누구를 섬기고 누구에게 예배하는 지를 되돌아보는 것만큼 그리스도인으로서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는 작업은 없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이 모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신학생들의 관심이 전무 하다는 데에 잠시 의아함이 들었습니다. 주제가 어려운 것인지, 관심이 없는 것인지, 시간이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섣불리 판단하는 일은 자제하겠습니다. 저 또한 방 교수님의 단군사화나 샤머니즘에 관한 연구에 관심을 갖지만 문외 하기는 학생들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귀한 발제를 들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1. 단군사화를 기독교 신앙과의 공통점으로 연결시키는 연구는 방 교수님의 탁월함입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이 부분을 받아들이길 어려워합니다. 교수님의 연구가 계승 발전되기 위해서는 야웨 하나님의 계시 종교를 받아들이는 이스라엘과 가나안의 자연종교와의 혼합 문제를 잘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가나안 종교를 이방신으로만 규정합니다. 단군사화는 고대 한국인의 신화로만 치부합니다. 왜 단군사화 속에서 기독교의 하나님을 이야기하는지 교수님이 자세히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2. 유동식이 단군신화를 무교적 창작물로 해석한다는데, 방 교수님은 다른 의견을 가지신 줄 압니다(說明註(설명주) 유동식이 샤만 틀에서 단군신화를 보는 데 반해서 . 방 석종은 샤만과 구별 된 유일신 하느님이 전제된 단군사화로 해석 한다) 조금 전 언급한대로 제가 어떤 해석을 따른다는 것 보다 저는 아직 양쪽의 의견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說明註 방석종은 단군사화의 ‘환인’을 보편적인 인류조상 선사시대의 유일신으로 해석하고 샤만(무당)을 가나안종교와 비교한다면, 유동식은 후대 기원 3세기 샤만 종교의 신관과 연결된 샤만틀에서 단군사화를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방 교수님께서 단군사화와 기독교 신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방 교수님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사화를 사람들이 다 읽어본 것을 전제로 소개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는데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단군사화를 신화로 이해합니다(설명주 사화(史話)는 고조선 건국 기원전 2333년 중국 요나라 시대와 공시대(共時代 )의 고조선 건국을 서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석유환인(昔有桓因) 곧 태초에 하느님이 계셨다는 서술은 창 1 : 1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와 요 1 : 1 “태초부터 말씀이 계셨다”는 서술과 일치하는 문학적 표현이 경이(驚異)롭기만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창세기 1장과 요한복음 1장을 ‘신화’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 역사’ 또는 인간의 구원을 목적하는 말씀의 역사로 받아드립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과 말씀은 인간과 동시에 계심을 뜻합니다. ‘신화’는 주로 자연신들, 다신론적 세계관을 가진 나라들이 서술한다면, ‘사화’는 유일신 하나님의 계시와 믿음의 조상들의 소명(召命)관계를 서술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단군사화는 환인 하느님께서 중국 서북쪽 감숙성과 섬서성 영토(현재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합친 크기)를 환웅에게 지정하여 신정통치(神政統治, Theokratie)의 전권을 주어 다스리게 한 역사이기 때문에 ‘신화’보다는 ‘사화’로 ,즉 환웅의 소명사화(召命史話)로 불러 마땅합니다(삼하 7장 다윗의 소명사화; 왕상 3 : 5-15 솔로몬의 소명사화 비교). 이에 대해서는 유럽의 구약성서 해석학의 기초 학습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신학계와 신학생들은 이런 학습은 난해하다고 피하는 과목이라, 청강생 미달로 과목이 폐강되며, 쾌재(快哉)를 부르는 풍토입니다. “‘히브리어’ 그것 무슨 닭다리 오리발 같은 거 ! “ 하고 낄낄대고 놀려대는 어처구니없는 무지한 ‘가나안 인’의 모습을 보이는 ‘샤만성’이 현기독교인의 다른 면입니다. 깊이 뉘우치고 깨달아야 하겠지요 !)
3. ‘샤만적인 혼동에서 벗어나는 길’에서 현세지향적인 기독교 신앙의 문제(說明註 기독교는 내세지향적인 미래 부활의 종교이지요, 현세 지향적인 신앙은 부지중에 변질된 무속 샤만화 된 신앙이라 하겠습니다)와 무속의 주술의 차이점이 없음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제목에서처럼 샤만적인 혼동에서 ‘벗어나는 길’을 좀 더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의 신자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찾지만 마음은 물질신을 찾고 있습니다(說明註 네, 이런 신앙태도가 바로 마음으로는 유일신 야웨 하나님을 부르면서 육신으로는 바알 신 죄의 법을 따라가는 것이라 설명을 더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런 신자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샤만 종교성에 대한 분별력을 제시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설명주 현대의 성직자는 의외로 관료화가 되어 평신도와 멀리 있고, 평신도는 의외로 성경을 읽고 깨닫는 일을 ‘무식한 것’으로 등넘어로 던져 버리는 세태인 것 같습니다(시 50 : 17 “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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