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족(韓族) 조상의 하느님은 창세기 하나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방 석종 2016. 5. 5
-단군사화의 역사적 신 하느님과 왕 칭호(稱號) 특성-
신약에서 예수는 ‘하나님’을 주로 ‘아버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마 16:27; 18:19; 12:50; 6:23,32; 5:45 등 외 신약성서에 여러 구절 참고)로 가족관계를 칭하거나, ‘천국’, ‘하나님의 나라’(마 18:1 ;12:28)로 피안적인 영역을 ‘하나님’과 동일시한다. 드물게 예수는 아람어로 ‘엘리’(나의 하나님, 마 27:46 참조) 즉 조상의 하나님 또는 인류의 지고의 신(至高神)을 부른다. 신약 어디에도 이스라엘/유대인의 ‘야웨’(여호와), ‘앨로힘’, ‘아도나이’(나의 주님)의 하나님 부름은 없다. 이 점이 예수가 구약의 ‘야웨 예언자들’과 다르다고 하겠다. 정리하면 예수는 보편적인 혈통적-가족적인 ‘아버지’ 하나님이나 거룩한 영역의 하나님을 부르며, 피안적인 거룩한 영역을 ‘하나님’과 동격 적으로 칭한다. 예수는 민족적-교리적인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하느님 신 칭호(神 稱號)가 고대 문헌 중 동양 아시아권의 ‘고조선(왕검 조선)’의 환웅소명(桓雄召命)에 나온다. 아마도 시기적으로는 구약/신약 보다 앞서 있는 이른바 ‘단군사화’(檀君史話)에 석유 환인(桓因)은 ‘하느님’으로 또는 환국(桓國)은 ‘하느님 나라’로 불러진다면, ‘환인’하느님은 성서적인 의미로 인류의 지고의 신 ‘하느님’/‘하늘에 계신 분‘이며 조상의 하느님(엘 El 신)이요, ‘환국‘은 하느님 나라와 천국을 의미한다고 보겠다.
우리 한족(韓族)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다신론적인 신화(神話)는 없어도, ‘하느님’과 ‘하늘나라’를 기초한 건국사화를 제시하며, 하느님의 사명을 받은 선택받은 민족(이른바 천손 족(天孫族)임을 명시한다. 여기서 천손 족은 특정의 왕계(王系)보다는 구약성경의 ‘하나님 백성’으로 보는 것이라 하겠다. 환인 하느님은 정치적-군사적인 하느님이거나 특정개인에게 힘을 주는 샤만적인 신(神)이 아니다. 특히 환웅소명은 구약의 예언자들(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이나 왕(예 다윗 솔로몬)의 하나님 통치(Theokratie)를 선언하는 일대 종교사건에 해당한다. 이는 인간의 변화(곰이 웅녀로 변신)와 사회개혁(홍익인간)으로 구체화 된다. 그런데 우리는 잠깐 단군사화의 문헌적-정신적인 성격이 고대 중동 히브리인과 바빌론인의 신화나 종교와 비슷함을 역사적-문화적인 친속 성으로 보면서,어느 것이 먼저이며 나중인가? 누가 누구의 것을 본받은 것 인가?에 치중하여 역사의 기원(起源)을 문제 삼곤 하였다(임승국 번역/주해,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2007년, 28-29 쪽 참조; 가지마 노보루(녹도승,1925-2001), 일본 어 판 환단 고기는 문제의 여지가 있음). 그런 문제를 근거 없이 검증하려는 시도와 노력보다는 보편적인 인류의 공감력(共感力), 말하자면 태초에 유일하신 창조주 하느님의 인간 창조 즉 피조성에 그런 공통적인 성질이 내재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본다.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인간의 잠재된 능력을 통해 ‘하느님’과 ‘하느님 영역’을 깨달음은 인류의 공통된 것이라면, 동서양의 구별 이전의 것이요, 시기의 전후를 따져 동양인에게 서양인 옷이 입혀졌다는 식의 기원론을 말할 필요도 없다. 각국 족속의 언어의 제한 없이 오순절 성령 체험이 “하늘의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각 사람이 태어 난 곳의 언어로 듣게 된 현상”(행 2:2-8절)과 고대 중동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를 넘어 아시아, 아라비아인들이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행 2:9-11; 비교 마 17:5 구름 속 소리; 왕상 19:12-13 세미한 소리/소리가 임함)는 기록과 같이 단군사화의 ‘환인/환국’을 통한 ‘하느님, 하늘에 계신 분과 하늘나라’는 구약과 신약의 하느님과 하늘나라와 공통된 의미를 깨닫게 한다. 예배 찬송(1983년 판, 75 장, F. J. 하이든 곡,1798년 천지창조 ‘저 높고 푸른 하늘과’)에 “엄숙한 침묵 속...뭇 별이 지구를 싸고 돌 때에 들리는 소리 없어도 내 마음 귀가 열리면 그 말씀 밝히 들리네 우리를 지어내신이 대 주재 성부 하나님”이 인류를 한 가족 한 마음으로 살게 하는 역사(役事)하심이 아닌가 ? 그럼 이제 단군사화 본문을 문헌적으로 구체적으로 ‘환인, 환국’과 ‘서자/자’ 그리고 환웅과 웅녀 부부관계에 집중해서 살펴보자:
고기운(古記云) 석유환인(昔有桓因,謂帝釋也) 서자 환웅(庶子 桓雄) 삭의천하(數意天下), 부지자의(父知子意) 하시삼위태백(下視三危太伯) 가이홍익인간(可以弘益人間)...
환인(桓因)은 ‘제왕운기의 본기 인용문과 권람의 응제시주의 고기 인용문에서는 ’환인상제‘(桓因上帝)로, 홍만종의 해동이적에서는 ’천신‘(天神)으로 썼다. ’제석‘은 환인을 말하며 하늘에 군림하여 땅 위의 인간에게 혜택을 주며, 경우에 따라 징계와 책벌을 내린다. 자비와 엄격의 양면을 가진 지고적(至高的) 존재 즉 ’하느님‘이다. 인간들은 제의와 기도로써 그에게 호소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다(역주 삼국유사 I, 강인구 외공편저,이회문화사(以會文化社) 2003년, 140-147 쪽, 특히 143 쪽 참조).
웅녀자무여위혼(熊女者無與爲婚) 고매어단수하(故每於壇樹下) 주원유잉(呪願有孕) 웅내가화이혼지(雄乃假化而婚之) 잉생자호왈단군왕검(孕生子號壇君王儉)
여자가 된 곰은 더불어 혼인할 상대가 없어서 매번 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잉태하게 해달라고 간구하였으니, 환웅은 이에 [사람으로]변하여 그와 혼인하였으며,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 왕검이라 불렀다.
단군사화 본문의 하느님 환인과 환웅의 ‘부자’관계:서자(庶子, 여러 ‘아들들’), 부지자의(父知子意, 아버지 환인이 ‘아들’ 환웅의 뜻을 알다), 잉생자(孕生子, 임신하여 ‘아들’을 낳다) 등 ‘아들’이 세 번 나오며, 이는 환인과 환웅의 부자 관계가 2 회, 환웅과 단군의 부자관계 1 회를 나타낸다.
환인아들 환웅과 웅녀의 부부관계:
그러나 환웅과 웅녀는 ‘부부’(夫婦)관계로 즉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웅녀족인 조선족과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결혼관계로 나타난다. 즉 하느님 통치의 소명을 받은 지도자는 ‘아들’로, 지도자와 백성 관계에서 백성은 ‘아내’로 표현된다. 이와 같은 문헌이 구약 성서 오경과 예언서에 자주 나온다.
구약성서의 하나님(엘 El, 야웨 JHWH, 앨로힘 Elohim)과 백성, 왕의 ‘부자’관계(父子關係):
우리 말 환인(桓因) ‘하느님’(한문 상천(上天), 상제(上帝), 천제(天帝)은 인간을 초월한 절대자,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하며,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선악을 판단, 화복(禍福)을 내리는 분으로 기독교의 하나님과 거의 같은 신(神)이다(엣센스 국어 사전, 2442-2443 쪽). 구약 원문은 엘( El, 기원전 20-16 세기 경 족장시대) 신을 가장 오랜 신 칭호(神 稱號)로 말하고 있다. 그 의미는 모든 신화적 표현과 족장의 신상(神像)을 말하며, 신들과 인간들의 원 조상(元 祖上)이다. ‘엘’은 엄격하나 인정이 넘치며 천상회의를 주관하며 족장들과 가족을 책임지고 돌보며 도웁는 분이요, 창조자요 심판자가 된다. ‘엘’신은 구약에서 야웨(여호와) 하나님과 구별되지만(겔 28:2, 14, 16; 시 80:11; 36:7; 50:10 참조), 문헌적으로 초기와 후기(기원전 10 세기 - 6 세기 전후; 신 32:12; 사 40:18; 43:10, 12; 45:14; 말 2:11; 시 81:10; 출 15:11 등 참조)에 ‘엘’ 신(하느님)은 야웨(JHWH)와 앨로힘(Elohim)으로 바꿔 쓰였다. 엘 신은 조상/족장의 한 분 하느님이라는 것이 모섀에게 알려진 바가 있다( 출 3:6 ‘앨로헤이 아비카’ 네 조상의 신 엘로하).욥기에는 엘 신이 쓰였으며, 제 2 이사야는 ‘엘’(우리 신 칭호 ‘하느님’에 해당됨)을 이스라엘 하나님의 고유명사로 사용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는 고유명칭, 백성의 아버지 그리고 통치자 왕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단군사화 고기에 환인과 환웅이 부자(父子)관계로 있듯이 구약에서 하느님/하나님(엘, 야웨, 앨로힘)은 이스라엘 백성과 ‘아버지-아들’관계로 살고 있다. 야웨(여호와)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이스라엘을 자녀로 사랑한다(시 103:13), 교육하고, 책임지며 돌보신다(잠 3:12; 민 11:12; 출 4:22; 신 32:6). 이는 단군 사화에서 환웅천왕이 5 부(部, 곡식, 생명, 질병, 형벌, 선악 관장)를 두고 세상에 머물러 다스리며 교화(敎化)하는 제정일치 통치에 비교된다. 더 나아가서 야웨의 아버지 상(像)은 호세아 예언자에게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자기 아들로서 불러내는 분이다(단군사화에 ‘서자 환웅’ 비교; 호 11:1이하; 사 1:2 참조). 신적인 아버지의 권위(사 45:9 -11; 64:7)와 유일한 아버지 구원자(사 63:16)이다. 그리고 야웨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지으신 한 아버지, 한 하나님이다(말 2:10). 그 다음 하나님과 그의 아들 왕의 표상을 보면, ”너는 나의 아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시 2:7)는 시편 말씀은 신학적으로 ‘양자표현(養子表現) 공식’으로 육체적인 출생의 표상은 아니지만, 이는 하나님의 전권부여(全權 賦與)이며, 왕위의 권위인 동시에,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왕의 권위를 위협하는 상황을 알리는 것이다(삼하 7:14; 대상 28:6; 시 89:6-7, 27이하; 21:5-7 참조).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의 아들 ‘왕’은 하나님을 지존자(至尊者)로 모시고, 그와 영원한 계약을 맺는다. 그럼에도 왕은 신들(神)이요 지존자의 아들이지만 사람들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진다(시 82:6-7). 단군사화에서 환인이 아들 환웅에게 ”...아들에게 천부인(天符印, 제위(帝位)의 표지로서 하늘이 내려 준 3 개의 보인(寶印, 거울, 칼과 관인데, 최 남선은 관(冠)을 유력시 한다, 단군고기 잔석, 단군신화연구, 이 은봉 편, 온누리, 1986, 24 쪽 참조) )을 주어 그 곳에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는 구절은 구약의 다윗과 솔로몬이 야웨 하나님 아들로서 소명을 받는 기사(삼하 23:2; 왕상 3:5 -12)와 같다.
환인 서자(桓因 庶子) 하느님 아들(환웅 桓雄)의 정체성:
환인 하느님과 천상에서 세상을 탐구하던 환웅은 누구인가 ? 환인 하느님은 지고의 신(神)으로 그의 아들(桓雄)의 생각을 아시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시고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사상으로 환웅에게 천부인을 주어 ‘삼위태백’(三危太伯)으로 가서 다스리게 한 것은 무슨 뜻인가 ? 환인께서 그와 함께 그의 곁에 있는 서자(庶子 = 여러 아들들) 환웅이 물리적 공간(物理的 空間)인 하늘(天空)에 있다가 지상으로 하강(下降 = 내려옴)하여 내려온 것으로 상상(想像)하기보다는 지상적(地上的) 세계에서 영계(靈界)를 말하며 ‘하늘의 소명’을 받는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고로 ‘천상’(天上)은 천공(天空)보다는 신적인 영역의 영계(靈界) 내지 정신계에 해당한다. 물론 하느님은 지고신(至高神)으로 세상보다 높고 떨어진 곳에 계시지만 그가 함께 하는 ‘아들’은 지상세계에 사는 ‘인간’(人間)이다. 따라서 인간세계(인류)의 ‘하느님 아들’(환웅)이라 칭함을 받는 무리가 하느님의 뜻을 구하여 소명을 받은 후 보편적 인류를 위한 홍익인간 정신을 가지고 일정 지역인 ‘삼위태백’과 신시(神市)에서 그 곳 웅녀족(熊女族)과 결합하면서 웅녀부족의 여인과 결혼하여 아들(단군)을 낳아 조선(朝鮮)을 세운다는 이야기가 고기(古記)에 있다. 그런데 고기(古記)에 보면 웅내 가화이혼지(雄乃假化而婚之)가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와 혼인하여”라는 구절이 이해하는 데에 문제가 된다. ‘가화’(假化)는 ‘빌리다’ 또는 ‘일시, 임시’의 뜻과 함께 ‘일시적으로 변하다’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환웅’은 ‘사람’이 아닌 ‘신’(神)으로 있으면서 사람 웅녀(熊女)와 혼인한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 내용의 모순(Diskrepanz)이 생긴다. 위에서는 환웅이 귀족, 군사 지도자와 함께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삼위태백을 신시(神市)라 칭하고, 세상에 머물러 다스리며 교화하였다고 하면 이는 명백히 신의 사명을 받은 ‘신적’(神的)인 지도자로서 특별한 인간 부류이다. 결코 환웅은 ‘신’이 아니고, ‘인간’이요, 보통 백성이나 사람이 아닌 고대인 들이 부른 신적인 지도자로 구별된 ‘인간’이다. 이런 의미로 ‘환웅’은 ‘웅녀’와 구별된 하느님(환인)의 아들로 호칭(呼稱)되는 것이며, 선주민 토착적인 웅녀족보다 우위(優位)에 있음을 ‘환웅’(桓雄)으로 지칭(指稱)한 것이라 보겠다. 우리는 이와 평행 되는 내용을 구약 시편 82:6-7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라”)과 시 89:3 - 7 (“나는 내가 택한 자와 계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 주의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서 찬양 하리이다. 무릇 구름 위에서 능히 야웨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거룩한 자들) 중에서 야웨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에서 볼 수 있겠다. 이스라엘인은 일찍이 시편을 통해 세상군왕을 야웨 하나님의 아들로 칭하고, 세상보다 높은 천상 세계의 거룩한 자들의 모임(회합)에 함께 계신 두려운 하나님 또는 아버지(시 2:2-4, 7 비교) 관계를 ‘신화적’(神話的)으로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고대 단군사화 기록자(저자)에게서 ‘시편적(詩篇的)’ 인 표현사상을 음미할 수 있겠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환웅과 웅녀’관계에서 환웅을 사람이 아닌 ‘신(神)으로 볼 수 없으며, 그는 철저히 ’사람‘으로 하느님(환인)의 소명을 받은 하느님 아들로서 칭(稱)해진 ’홍익인간‘ 사상을 실현하는 하느님 통치 체제의 지도자이다. 이런 지도자가 ’신적인 아들‘로서 토착민 웅녀와 잠시 ’평등한 인간관계‘를 갖고 웅녀를 아내로 삼은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신인동형(안트로포모르페)으로서 ’하나님이 인간형상이 됨‘도 예수의 ’가현설‘(假現設, 신이 사람의 형상으로 잠시 이 세상에 나타남)도 아니다. 그러나 단군사화 저자는 환웅의 신적인 권위에 비중을 두고 ’가현‘(假現)이 아닌 ’가화‘(假化)라는 용어를 조어(造語)할 수 있었다고 본다. ’가현‘과 ’가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 가화는 신적인 지도자 하느님 아들이 보편적 인간과 ’혼인‘하여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것이라 보겠다.
하느님/하나님과 백성의 부부(夫婦) 관계
- 단군 왕검 천도(遷都)와 주(周)와 한(漢)의 식민통치-
우리가 아는 이른바 ‘단군신화’는 ‘고기’(古記)의 내용으로 주(周)나라 기자조선의 식민통치로 단군의 장당경 천도와 단군 조선의 1908년 역사를 말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당배구전에는 주나라 기자조선과 한(漢)나라 3군(현도, 낙랑, 대방)의 식민통치를 서술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고조선(단군조선)이 기원전 108년에 한나라에게 멸망하기까지 어떤 형태로 고조선이 존속 되었는가 ? 조선족이 한족(漢族)의 정복정치에 의해서 관독구(管督區)가 되었다면, 한족(韓族)이 한족(漢族)과의 관계에서 국력의 쇠퇴가 시작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당배구전과 통전(通典)은 기자조선과 한(漢) 3/4군이 봉(封)해진 사실만 전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인 변화는 고기(古記)의 신정정치와 홍익인간의 평화적인 세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전황(戰況)과 조선족의 부끄러운 식민지배의 역사를 보여 준다. 환웅의 아내가 된 웅녀 조선족과 그의 아들 ‘단군’왕이 한족에게 짓밟히며 피난하고 나라의 수도를 옮겨가며, 영토를 빼앗기며 결국은 죽어 산신(山神)이 되었다는 멸망사(滅亡史)는 절망적이지만, 산신(山神)은 산이 많은 고조선영토를 수호하면서 인간이 못된 포악한 호랑이를 데리고 민족을 보호한다(山神圖 참조). 그래서 고조선은 한족(韓族)에 의해 마한(馬韓, 조선 왕 준(準)이 고구려를 세움)과 신라(진한, 박혁거세), 백제가 차례로 건국된 것을 일연의 삼국유사가 전한다(상세한 것은 역주 삼국유사, 강인구외 공저, 이회문화사,2003년, 158-163 쪽 참조). 그러므로 고조선(기원전 2333년)은 역사에서 끊어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그 후 고구려 신라 백제 발해 고려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과 북한으로 계속 존속되고 있다. 다만 서북 광활한 대륙과 만주에 한족(漢族)의 지배 아래 동북3성 조선족 자치구(自治區)와 독립정부 한반도 북부(조선 인민공화국)와 남부(대한민국)가 남아 ‘고조선’ 역사를 말하고 있다. 그 동안 한족/화족(華族)은 이민족들(흉노, 몽골, 여진, 일본인)에게 지배를 받는 부끄러운 역사를 살았었다면, 한반도 역시 한족(漢族)과 같은 부끄러운 역사를 겪었다. 그런데 그 한족(漢族)이 신해혁명(1912년)에 이어 공산혁명(1948)으로 지금은 미국 다음 세계 제 2위의 국력을 과시하고 있다. 한반도 북한은 중국세력을 업고 6세기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침공하는 남하정책(南下政策)으로 국력을 소모하면서 내부붕괴를 자초하여 발해로 이어 지다가 역사에서 사라진 것을 잊어버리고 남한에 위협을 계속하면서 국력을 소모하고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
북한이 대한민국에 공격전(攻擊戰)을 하는 경우, 남북한의 단독 전쟁으로 끝날 수 있다고 보는 가 ? 전쟁 즉시 중국이 ‘단군조선’ 말기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듯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최소한 평양과 원산 라인을 긋고 한반도 부분을 관독구로 점령하여 ‘중국조선’으로 설치하는 것을 계산해보았는가 ? 북한(北韓)의 6. 25 전쟁으로 한반도를 초토화시켜 잿더미를 만들었던 강대국들 조차 승전(勝戰) 없는 휴전 조약을 맺고 영토분계선을 수호하는 한반도(韓半島)를 보아라 ! 산신(山神)이 된 고조선 ‘단군’이 데리고 있는 ‘호랑이’가 누구인가 ? ‘호랑이’가 포악성을 그칠 수 있겠는 가 ? 아무도 믿지 못하는 불안한 산신도의 호랑이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하는 가 ? 곰이 사람 여인이 되어 낳은 ‘단군’이 산신(山神)이 되어도 ‘사람’이 못된 ‘호랑이’는 누구인가 ? 웅녀가 함께 살면서 겪어야 하는 가증하고 포악한 동거인의 집단(集團)이 아닌가 ? 구약 성경에 인류 대 파국(大 破局)의 역사 앗수르에게 망하여 민족이 흩어져 사라진 북 왕국 이스라엘(기원전 722년 멸망함)과 유황불로 사라진 소돔이라 해도 하느님(하나님)이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 - 환인에게서 환웅의 소명(召命)과 홍익인간 정신 - 을 기억하고 용서한 후 그들이 모든 행한 일을 기억하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고 풀어주신다”는 회복의 약속이 있다(겔 16:53-63절을 보라). 그러므로 남북한은 어떤 극한적인 전황과 역경에서도 자괴(自愧)하거나 자멸(自滅)의 역사를 자초할 수 없다.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포로 국가가 아니라 틈바구니를 열고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국가 통치자 환웅 위에 하느님 환인이 계신 조선족 단군후손은 군사력의 위협이나 경제력의 자만을 힘으로 삼을 수 없다. 하느님의 위협 아래서 어린 양과 함께한 이리, 어린 염소와 함께한 표범, 송아지와 살진 짐승과 함께한 어린 사자를 끌고 가는 ‘어린 아이’가 되어, 애프라임이 유다를 질투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애프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하듯 북한과 남한이 서로 질투하거나 괴롭게 하지 아니하며, 하느님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으나 이제는 하느님의 진노가 돌아섰고 우리를 안위하시게 하는 공존관계가 회복되고 하느님을 힘으로 삼는 변혁의 땅이 되기를 기도해야 하겠다(사 11:6, 13; 12: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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