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석종(方錫淙, 감신대 구약학 교수)
1. 홍익인간의 역사적 배경[1]
고조선 흥망성쇠와 중국 전국(戰國 기원전 403-221년), 연(燕) 한(漢)시대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이전(以前) 단군 고조선(古朝鮮)
개요 역사는 전쟁이요, 전쟁은 민족 국가의 생사소멸의 원인이요 결과를 가져다준다. 단군사화(왕검조선 기원전 2333년-108년 여름 망함)에 전쟁사는 전국시대 이후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朝鮮 列傳)에 전해진다. 한민족(韓民族)과 한반도는 지정학적(地政學的)으로 북방 대륙세력과 남방 해양세력이 교차 충돌하는 지점이요 각축장이다. 현재는 동서냉전 구조 속에서 북조선과 대한민국이 분단된 상태이다. 한민족(韓民族) 전쟁사는 고대부족국가시기에서 출발한다. 한민족 부족국가들은 주로 한민족(漢民族)과 대결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중국, 만주(거란 여진족), 몽고, 일본과의 전쟁이었다.
고조선은 초기 한민족 국가집단은 주나라(周), 연(燕), 한(漢)의 접경지역에 있었다. 고조선 국가 이후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1. 중국침공을 대비한 요하건너에 방어기지를 구축한 시대, 2, 선제공격의 중국팽창세력시대, 그 이후 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는 중국 한나라의 원교근공책과 거란과 여진, 몽고의 팽창정책 시대, 3. 조선시대(朝鮮)는 여진, 일본의 대륙침략시대, 4.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북조선의 공산침략, 중국, 러시아의 해양세력 견제와 방어시대, 일본의 경제침략 시대, 북조선 공산화 위협 속에 한미 방위조약과 유엔 서방연합국과 연계한 시대 (1948-1953년, 1953=2019년 현재), 5. 남북통일과 조국통일 구호 속에 자유민주주의 통일과 고려연방제 통일 갈등 시대. 대한민국의 경제대국, 북조선의 핵무기 위협, 중, 러, 북의 공산화세력과 한, 미, (일)의 자유민주주의사이의 대한민국.
대한민국 방어: 주변국들이나 적대국들이 전쟁으로 어느 나라를 점령할 수 없다, 피해만 입는다는 판단을 스스로 갖도록 무력사용을 자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전쟁보다는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한다. 이를 위해서 정치, 외교, 경제, 군사력을 보유하는 것인데, 변수가 생길 수 있다. 민족 국가 간 이념문제이다.
한반도 : 중국 동북부 지역, 한반도 북부지역의 부족국가 집단은 중국 접경지역으로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대한민국 시조국가 고조선 : 기원전 4-3 세기경 고조선은 동북부 지역애서 패권을 장악했다.
고조선과 연(燕)의 전쟁: 기원전 4-3세기 고조선은 서쪽 민주 요하유역과 주변 부족국가 진번, 임둔에 대해서 우세하였다. 주(周) 나라 이후 전국(戰國) 시대(기원전 403-221년)에 칠웅(七雄) 중 연나라(북경지역에 근거를 둔)와 충돌하면서, 약육강식의 전국시대에 지역패권국인 연나라는 고조선 농경국가에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연나라는 내부세력을 규합하고, 북방 흉노(匈奴), 동쪽 선비(鮮卑)에 대해서 상비전력을 유지했다. 주나라 권위가 유명무실한 전국시대는 중국 각처 제후들이 왕(王) 칭호를 썼는데 이때 고조선도 왕칭호를 사용헸다. 연나라 소(昭) 왕은 기원전 311-279년 고조선의 왕칭호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고조선이 강해지는 것을 막으려했다. 중국은 팽창정책과 주변 나라에 대해서 견제정책을 썼다. 중국은 철기시대(鐵器時代)에 공세적이었다면, 고조선은 청동기 시대에 수세방어적이었다. 조선은 예맥족(濊貊族)으로 중국의 북동지역, 북부지역에 집단생활을 하였다. 중국은 약육강식의 공격적인 민족으로 철기문명의 많은 다민족의 광활환 영토를 차지 했다면, 조선족은 현상유지의 방어적이라 중국에게 공격의 대상이요 토착 농경사회의 집단생활을 영위했다. 성격적으로나 문명적으로 중국이 범(호랑이)에 비유된다면, 한족(韓族)은 곰(熊)에 비유가 되겠디.
그런데 단군사화 속에 나타나는 환웅, 곰, 호랑이 등이 등장하는 우화와 같은 이야기 형식이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흔히 알려져 있는대로 이 이야기가 곰과 호랑이를 상징하는 토템 부족들의 역사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할지라도 이런 우화와 같은 방식을 택하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의도 역시 수수께끼와도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고대인들과 현대인들의 역사를 인식하는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고대인들은 그 이야기가 전달하는 객관적 사실이 아닌 메시지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 사실을 전달하는 역사는 근대 이후에야 서구에 대두된 개념이었다. 고대인들은 아마도 이를 동화나 우화와도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들의 실존적 역사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형태가 성서에도 또한 나타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뱀이 하와를 꾀어내어 선악과를 먹게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나 그렇지 않은가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스르는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신약에 나오는 예수의 비유 역시 쉬운 이야기를 통해 복잡한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면에서 단군사화의 곰과 호랑이 이야기가 전달하는 중요한 효과와 목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토템 부족들에 관한 복잡한 역사적 이야기는 고대인들에게 불필요한 내용들이었을 것이다. 보다 쉽고 직관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가 홍익인간이라는 환인의 계시와 이 이야기속에서 환웅의 말을 통해 전달되는 인간됨의 조건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이야기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성경과 단군사화에서 공히 하느님의 메시지(계시)가 인간 지도자들 혹은 예언자들을 통해 비유적인 이야기로 선포됨을 발견하게 된다.[2]
고조선과 제(齊) 나라 그리고 연(燕)의 공격
청동기 시대의 고조선은 춘추시대 제(齊) 나라와 교역을 통해 철기문명을 받아들여서 철제무기, 공성(攻城)무기제작, 요새(要塞)와 성(城)을 구축했다. 그러나 기원 전 300년 경 연의 소왕(昭王)은 동호를 공격하여 공을 세운 진개를 통하여 고조선을 공격하게 했다. 고조선은 전국시대에 전투경험이 있는 철제무기로 무장한 연나라 군대에 비해 열세였다. 고조선은 대규모 전투를 수행할 인적자원과 능률적인 조직을 갖추지 못했으며, 연(燕)에 의해 고조선은 요동지방과 청천강 이북지역을 상실하였다. 연은 한반도 대동강과 청천강 사이를 완충지대로 삼아 요새를 구축하고 조선인과 연(燕) 인의 거주를 금지하였다. 따라서 고조선은 평안남도와 황해도북부 지역만 보유하게 되었다.
연(燕)의 고조선 식민화 정책 : 연 나라는 요서와 요동지역에 연(燕) 나라 주민을 이주(移住) 시켜 점령지역을 자국(自國) 영토로 만들려고 했다. 따라서 토착 조선인과 이주해온 중국인을 섞여살게 하였다.(주의 : 현재 중국 정부는 제주도와 대한민국 각처에 차이나타운을 불하받아 부동산을 사들여 중국인을 이주케하여 토지경제 침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문에 공고되고 있다. 한반도 남해바다를 점령하고 있다고 한다).
고조선은 연과 전쟁애서 패하여 요동지역과 한반도 북부지역의 지배권을 포기하여 수도를 평양(平壤)으로 천도했다.
위씨 위만조선(衛滿朝鮮)과 한(漢)의 전쟁
전국칠웅(戰國七雄)의 각축전 때 진(秦)나라가 연횡책(連橫策)으로 6 국의 합종책(合從策)을 무효화 시키고 흉노의 침공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축조할 때 한반도는 평온할 수 있었다. 진나라는 3왕 14년만인 기원전 206년 항우와 유방에 의해서 망하자, 유방은 초와 한과 대결에서 4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202년 한(漢)을 세웠다. 고조(高祖)가 된 후 군국(郡國)제도로 중국전역을 분할 통치하였고, 이 때 한반도 북부 고조선은 중국 한의 경계에 맞닿게 되어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한은 동호족과 중앙아시아 지역을 차지하여 동 서 북 3 방면에서 중국을 위협하는 흉노의 세력을 약화시켰으나, 한고조는 흉노에게 포로의 위기를 당하다가 7대 무제(武帝) 기원전 156-87년 중앙아시아 진출의 발판을 구축하였고, 기원전 127-119년 10년간 흉노를 공격하여 그들을 고비사막 북방으로 축출하고, 요하지역과 한반도를 주시하였다.
고조선의 위만 중국 연나라 피난민 위만
연(燕) 나라에서 조선으로 피난한 위만이 고조선 준(準) 왕의 신임을 받고 한(漢)의 군사적 동향을 보고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위만은 한의 대군이 공격해 온다는 허위사실(가짜뉴스)을 보고하면서 왕검성 경비책임을 맡은 후 준왕을 측출하고, 194년 (108년 까지 86년간 위만계 통치)고조선 왕위에 오른다. 위만의 고조선은 한의 변방을 수호하며 한과 활발한 교역을 한다. 한이 흉노와 접전(接戰)이 종식되자 한은 고조선에 관심을 가진다. 위만의 손자 우거왕(右渠王)은 기원전 110-108년 중국이민을 받아들여 그들을 통해 선진문물을 흡수하여 군사력을 강화하고 주변국을 합병하면서 (위만의)고조선을 강국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흉노정벌로 국력이 소모된 한에게 강국 고조선은 위협이 되었다. 고조선은 진한의 왕이 한에 입조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한무제(漢武帝): 기원전 109년 한무제는 우거왕에게 적대행위를 중지할 것을 요구했고, 한나라를 섬기라는 임무를 섭하에게 주어 고조선으로 파견하였다. 우거왕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한무제는 순체가 이끄는 육로군 50,000과 양복의 수로군 7,000의 원정군을 파병한다. 고조선은 순체의 부하 다(多)의 초기병력을 격파하니 다는 참형되었다. 순체는 패장(敗將)이 되었다.
양복(楊僕) 해로군은 단독으로 왕검성을 기습공격이 순체의 육로군과 합동공격보다 효과적이라 판단하고, 7,000 해로군으로 직접 공격하였으나, 우거왕은 양복군을 격파하였다.
한무제와 고조선 우거왕의 화의성립(和議 成立)
고조선 우거왕은 한무제에게 화의예물로 말 5000 필, 군량을 가지고 화의를 진행시키지만, 한의 사자 위산을 따라 호위병 10,000명을 대동케 했다. 왜냐하면 고조선과 한은 1.상호불신, 2. 상호일방적인 해석과 주장으로 자국 중심적인 목적과 의도로 합의된 화의였기 때문이다.
한무제의 실패작전과 고조선의 멸망원인 : 한무제는 한의 육로군 순체와 수로군 양복의 군사력보다는 고조선 지도층의 내분으로, 즉 주화파와 주전파의 암투로 양분된 틈을 타서 고조선 우거왕과 신하를 살해케 하여 왕검성을 무너뜨렸다(기원전 108년 여름). 고조선 고위층의 투항, 왕의 살해, 고조선 백성 사기 저하로 고조선은 붕괴되었다.
한(漢)의 식민영토가 된 고조선:[3] 고조선은 방어의지와 전투력부족보다는 내부가 두파로 갈라져서 자멸한 경우이다. 한무제는 전후처리가 잔인했지만, 여기서는 그가 고조선지역과 주변 4개의 군(郡)인 낙랑, 임둔, 진번은 고조선 영토에, 현도군은 예(濊)지역에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한 역사가 삼국유사, 당나라 배구전, 고죽국(孤竹國)에 주(周)가 기자조선을 봉했다는 3군 설치기록이 있고, 통전(通典)에는 나중 현도가 추가된 4군 설치 기록이 있다. 중국 한나라는 고조선인에게 문화적 예속, 경제적 착취, 빈곤방치로 식민통치를 했고, 소수의 조선인만 한인 비호 아래 윤택한 생활을 허락했지만, 한인의 오만과 전횡은 심했다. 한인의 인종 차별적인 식민통치가 조선인의 종족적(種族的) 자각을 일깨워 주어 고조선 후예들이 영토 확장을 위한 고구려를 세우게 되었음을 볼 수 있다. 한(漢)나라의 자국 민족 중심의 식민적인 차별정치에서 고조선인들은 군왕보다는 하늘의 하나님(환인 桓因) 중심으로 역사를 보았다. 그래서 고조선역사 기록에[4] 편협한 민족보다는 보편적인 인간 인류를 널리 배려하여 평등하게 다스리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정치이념으로 말하고, 하느님의 인도적인 계시(啓示)를 주변 공격적인 민족들의 틈바구니에서, 즉 주(周)나라와 전국(戰國) 시대를 지나면서 인간적-민족적(人間的- 民族的)인 자각으로 역사과정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고조선 역사 古記는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는 환인, 환인과 아들 환웅의 천상회의(天上 會議), 환웅의 태백산에서 신시로 내려옴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신적(神的)인 행동이라 ‘신적인 이야기’ 곧 ‘신화’(神話)라 할 수 있겠으나, 이는 개념적(槪念的)으로 고대(古代)에 세상 통치자가 특수하게 하늘의 뜻을 받는 소명(召命)을 서술하는 문학적 기록에 해당한다면, 왕권을 신성시하는 소명사화의 천상적-신화적인 표현이라 왕권의 권위를 상징하는 역사(歷史)라 부르는 것이 지당하다. 그래서 당초 일연은 일반 세상역사와 다른 범주, 즉 기이 제이 (記異 第二) 1. 서(敍) 2. 古朝鮮(王儉朝鮮)이라 명백하게 표명(表明)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후대에 제삼의 세력과 번역자들이 문서증거력에 등한했던 시대에 조선의 시원인 고조선 역사를 벽두에 ‘환인과 환웅’을 뒤로 제치고 점차 중국세력에 의해 밀리는 역사의 주인공 단군에게 무게를 두어 고조선영토가 중국 한(漢)의 식민지역으로 끝나는 울분의 역사를 신화(神話)로 왜곡(歪曲)하여 조선의 역사를 직시 성찰하기 보다는 역사의식을 불투명하게하고 곡해(曲解)하는 대로 유도하는 작업이라 하겠다,
좌우간 기원전 2333-108년 존속한 고조선은 중국의 접경한 국가로서 중국을 위협한 국력으로 주(周), 연(燕), 한(漢)의 접경국가로서 수없는 공격과 침략을 받으면서도 최후에는 한(韓) 무제에게 군사력과 전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정치외교 역량부족과 내부의 분열로 자멸에 가까운 망국(亡國)의 역사를 쓴 민족이니 앞으로는 정권 잡은 자들과 국가 관료 집단이 자기 독단 세력으로 분열된 이념(理念)보다는 국민이 저 마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을 가진 인간으로 존중된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겸손하게 봉사하며 목자(牧者)로서 하늘의 계시 홍익인간 이념을 실천하는 날을 고대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홍익인간을 정치영토사적인 관점보다는 보편적인 인류 인간 차원에서 홍익인간을 인도적 인본주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삼균적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널리 인간을 유익하게 하자는 교육 정치적인 이념으로 그를 해석하고 있다.[5]
고조선은 기원전 2333-108년 2200여년을 존속하는 동안 주변나라 공격보다는 방어 또는 침공 받는 역사 속에서 전쟁과 세계를 경험하였다. 그런 가운데 홍익인간은 민족과 영토를 초월한 일종의 평화정책이라 하겠다. 문자적=문법적으로 ‘홍’(弘은 부사적으로 ‘널리’와 동사적으로 ‘넓히다’의 의미이다. ‘익’(益 더하다 늘리다 유익하다)은 “널리 인간을 유익하게 하다” 또는 “널리 인간을 늘리다“ 이다. 홍익인간이 이중적 다의적인 의미를 가진다면, 인간을 복되게 하고 인간을 늘리는 정책을 뜻한다. 인간을 늘리면 생활하는 땅을 넓히고, 풍요하게 해야 한다. 진(秦)의 장의(張儀)가 연횡책(連橫策)을 제시하여 춘추전국시대에 소진이 주장하여 진나라에 대항한 합종책(合從策) 한 · 위 · 조 · 초 · 연 제 6개국이 진에 대항한 공수(攻守)동맹을 해체하고 6개국과 각각 단독으로 화평조약을 맺으려 하였다. 이런 중국대륙을 중심한 국제외교와 팽창정책에 대응 하는 상황에서 고조선은 영토와 민족 팽창정치를 하느님을 중심한 하느님 아들 된 환웅의 홍익인간 신정통치 이념을 건국사화의 중심사상으로 천명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종전 자국 중심 역사관점으로만 본 홍익인간을 주변 강대국과전쟁들을 경험하면서 강대국의 영토 ㆍ 민족 팽창, 식민 정치 계획에 맞서 고조선 홍익인간은 인간 · 인도주의로 하느님의 신정통치를 환웅에게 명령 · 계시한 것입니다. 중국의 힘의 정치 대 왕검조선의 신정통치 이념으로서 홍익인간이라 하겠다.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신정통치를 보자면 문학적-문체 분석에서 문장주어가 통치자를 세운 환인 하느님과 관계에서 홍익인간의 뜻이 교육이념보다는 국가를 다스리는 왕의 통치행위로 보면 정치이념이고, 왕 위에 하느님관계로 보면 인간이념보다는 신적인 계시에 해당하니 하나님계시인 신정통치 틀에 연결된 정치이념이라 하겠다. 주변 강대국의 힘의 정치에 맞서서 절대왕권을 부정하는 하나님중심의 신정통치를 선포하는 신앙에 가까운 사상이라 하겠다. 그러나 중국이 왕검조선의 하느님 신정통치가 절대 왕권중심의 중국보다 한수 위라는 걸 알고 신 없는 무신론적인 국가종교인 유교, 불교, 도교를 국교나 국민종교로 삼아 하느님 신앙을 물러나게 했던 역사가 동양세계를 지배했던 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또는 무신론의 유물사관적인 공산당정권으로 버티고 있다고 보겠다. 즉 다신론적 신화의 국가종교/공산당 정권과 유신론적-민주주의적 기독교와의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고 보겠다[6].
2. 홍익인간의 어의론적 이해
단군사화 본문: 고기운(古記云) 석유환인(昔有桓因) 서자환웅(庶子桓雄) 삭의천하(數意天下) 탐구인세(貪求人世) 부지자의(父知子意) 하시삼위태백(下視三危太伯) 가이홍익인간(可以弘益人間)... 이주곡주명주병주형주선악(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 재세이화(在世理化).
새번역: 고기에 이르기를 태초에 전능한 하느님이 계셨는데, 서자아들 환웅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하여 구하니, 아버지께서 아들의 뜻을 아시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실 때, 인간/백성을 크게 번성케 할 만하니,...[7] 또 (환웅이) 먹을 곡식을 주어 살리고 병을 치료하고 형을 다스려 선악을 판단하며, 세상을 살피며 고쳐나갔다.
주의(注意): ‘옛날에’를 ‘태초에’로, ‘탐하여 구하였다’를 ‘찾아 구하니’로,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을 맡아서 관장 하고’를 ‘곡식을 주어 살리고 병을 치료하고 형을 다스려 선악을 판단하며’로, ‘세상에 머물며 다스리며 교화하였다’를 ‘세상을 살피며 고쳐나갔다’로 새롭게 번역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본문 해당 한문(漢文)의 의미들을 문맥에 맞게 골라서 번역하였음을 알린다.
어의론적 해석(자구(字句) 풀이):
⁑석유(昔有)의 ‘석’(昔)은 ‘옛날’, ‘오래다’, ‘앞서’, 시(始)는 ‘시작하다’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하느님’의 시간과 관계로 ‘태초에’(昔)로 번역하였다. 독일어 Am Anfang(시초에), 영어 in the beginning, 그리스어 엔 아르케 Ἐν άρχῆ[처음에], 히브리어 베레쉬트
[처음에]이다. 고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칠십인
역) 창세기 1:1 벽두는 공통적으로 ‘처음, 시작’의 어휘가 쓰인다. 이는 한문
‘昔’과 일치하는 의미이다. ‘석유환인’의 문맥에서는 ‘비롯할 석’의[8] 의미가 적합하겠다. 왜냐하면 환인 하느님은 인간 시대의 ①옛적이나, ⑤전대(前代) 옛적보다는
시간을 초월한 神的인 시간의 시작에 현현(顯現)하기 때문이다.
⁑환인(桓因)에서 ‘환’(桓)은 굳셀 환의
무모(武貌)이다.[9] 인(因)은 ‘근본’을 뜻한다. 문자적으로는 굳센 근본인 무신(武神)인데, 일반적으로는 조선어 ‘환한’, ‘환하다’를 한자음(漢字音)으로 음역한 것이라 한다. 아무튼
인간조상(祖上)이 아니라 신적(神的)인 ‘하느님’이시라는 데 주목(注目)할 필요가 있다. ‘환인’(桓因), 즉 굳센 분이란 표현이
구약 창세기 49:24 야곱의 강한 자 ‘아비르’
; 사1:24 ‘이스라엘의 전능자’ ‘아비르 이스라엘’ ![]()
로 변천 된 ‘하느님 명칭’을 분별해 볼 수 있다. 즉
강한 자를 전능하신 분으로 부른다. 우리도 ‘환인’을 문자적으로 ‘굳센 근본’ 이냐 ‘환한 빛’이냐를 따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느님’으로 부르는 것이 신앙적으로 합당하다고
본다[10].
⁑수•삭의(數意)는 여기서 자주 ‘삭’(數)과 ‘생각할’ 의(意)로 읽혀지며 천하를 자주 생각하다로도 해석된다.[11]
⁑부지자의(父知子意)는 아버지 또는 신(神)이 아들•사람의 뜻을 동감하고 허락한다는 의미이다. 아들의 생각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버지 환인은 아들 환웅이 삼위태백 영토를 다스리려는 것을 아시고 그의 열망에 마음을 빼앗긴다(탐구인세). 그래서 환인께서 내려다보시니 삼위태백이다.
⁑삼위태백은 환웅이 탐하던 영토범위이다. 환인께서 그곳이 홍익인간 할 만하다고 한 후 환인께서 환웅에게 천부인 3개를 주어 삼위태백으로 가서 다스리도록 명령한다. 지금까지 환웅은 천상회의에서 계시를 듣고 환인이 지정하신 삼위태백 영토를 통치하는 전권(全權)을 위임 받는다. 정책(政策)은 환인 하느님의 뜻인 홍익인간이다. 또한 그것은 구체적으로 신정통치(神政統治) 5부 체제 주곡주명주병주형주선악을 관장하는 것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의 홍(弘)은 부사적 용법으로 ‘크게’를 의미하고, 익(益)은 타동사로 ‘늘리다’ 혹은 ‘더하다’를 의미하는데, 곧 홍익(弘益)은 ‘크게 무엇을 늘리다/번성케 하다’의 뜻이다. 뒤에 나오는 동사의 목적어 인간(人間)/백성과 함께 이 구문은 ‘크게 백성을 번성케 할 만하니’를 의미한다.[12] 따라서 태초에 환인 하느님은 ‘창조주’로서 하느님 뜻에 부합하는 인간(부지자의 父知子意), 다른 말로 ‘하나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창조행위를 나타내신다. 이런 인구증가와 번성(繁盛)의 원망(願望)은 주위의 들끓는 짐승들과 원시인류의 살해행위와 질병의 위협에서 많은 수의 하느님의 백성(환인 백성)의 힘으로 넓은 땅을 다스리려는 뜻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인구로 적수(敵手)를 대항해서 넓은 영토를 지배하려는 선의(善意)의 신정통치의 욕구가 반영된다.
⁑천부인(天符印) 3개는 여기서 삼위태백 영토를 다스릴 환웅(桓雄)의 신적(神的)인 신분과 권위와 힘을 나타낸다. 즉 고대 통치자가 지닌 거울(鏡)은 신(神)의 위협 아래 통치자 자신의 성찰을 요구하고, 검(劍,칼)은 무기이라면, 관(冠)은 통치자의 신분과 권위를 상징한다.[13]
삼위태백(三危太伯)의 지리적 위치 :
그럼 우리가 주목할 것은 첫째로 지리적으로 삼위태백(三危太伯)은 어디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답이 있다: 하나는 ‘삼위’가 중국 서쪽변방 돈황(敦煌)이고 태백(太伯)은 한반도 평안도 영변부 묘향산(妙香山)이라는 것이고,[14] 다른 하나는 삼위가 중국 감숙성 돈황이고, 태백(太伯)은 섬서성 보계시 태백산(太白山)이라는 것이다. 전자는 ‘삼위태백’이 지리적으로 중국 서북쪽을 지나 만주를 거쳐 한반도 북부라면, 후자는 그가 중국 ‘서북쪽’ 감숙성과 섬서성(陜西省)에 위치하게 된다. 문제는 전자(前者)와 후자(後者)에게 있다. 전자가 말하는 삼위태백이 중국-만주-한반도 영역의 범위는 지리적-역사적으로 근거가 박약하다면, 후자의 삼위태백은 조선족의 한반도 지역 밖의 중국대륙의 북서쪽 감숙성-섬서성은 조선족 거주영역과 무관(無關)하다는 것이다. 조선이 위치했던 삼위태백 영역의 역사적인 사실이 없을까? 그것은 역사적으로 중국북부 지역의 동이족(東夷族)과 남반부 지역의 하족(夏族)의 문화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삼위(三危)가 중국 북서쪽 ‘돈황’으로 고조선의 역사적인 근거가 있는 반면, ‘태백’(太白, 太伯)이 한반도 백두산이라면, 지리적으로 중국 삼위와 너무 떨어져 있다. 그래서 “중국-만주-한반도”를 포괄하는 영역을 말하는 것은 역사적인 근거가 없고, 있다고 해도 너무 무리한 허구적-주관적인 해석의 우(愚)를 범하기 쉽겠다.
문제의 해결은 인류 역사적으로 선사시대 즉 신석기 시대에 중국 북부의 동이족(東夷族)의 조상 신농(神農)의 무덤이 태백산 지역 본계 시에 있다는 사실이다(기원전 6000-5000년). 산해경에 “유대인지시명왈대인지각”에 환웅의 신시(神市)와 ‘파곡산’의 파는 ‘밝’이며 밝곡산은 ‘태백산’을 일컫는다.[15]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홍산 문화 앙소문화의 환국(桓國)시대(기원전 3898-2333년)가 환웅 한족(韓族)의 역사와 관계가 되면, 그것은 한족이 중국 땅에 한족영토(韓族領土)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기후와 지형적으로 삼위(三危)산이 있는 감숙성(甘肅省 간쑤성)은 북 아열대이며 사막지대만 빼면, 가로 세로(한반도 백두대간 비교) 산맥의 고산, 분지, 평원은 백두산으로 시작되는 한반도 지형과 비슷한 면이 있어 한족의 한반도 입주 후에 중국의 도시들이 한반도의 지리에 환치(換置)되지 않았나 짐작이 된다. 중요한 것은 단군사화에서 환인(환인 하느님)께서 태초(太初)에 환웅에게 “하시삼위태백”(下視三危太伯)으로 통치영역을 계시했다는 점이요, 신정통치가 건국사화에서 수립되었던 사실이다. 고로 한족(韓族) 고대영토(古代領土)가 결코 허구적-상상적이 아니라 토착적(土着的)-역사적 문명에 근거한 영토범위임을 확인할 수 있겠다. 현대적으로 삼위(三危)가 있는 감숙성(중국 간수성)은 45만 4400평방 킬로미터이고 태백(太白)이 있는 섬서성(陜西省,산시성)은 22만 평방 킬로미터이면 유럽의 프랑스(64만 평방)와 네덜란드(4만 1천 평방)를 합친 면적이요, 한반도(220,847평방, 북한 12만 평방, 남한 99,720평방)의 3배가 조금 넘는 면적에 해당한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이 민족들에게 영토를 지정해 주는 문헌을 찾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겠다. 하나님은 민족들에게 혈통과 언어 그리고 지역별로 영토를 지정해 주셨고,[16] 민족에게 영토가 지정되면, 그들의 영토를 침범하거나 전투행위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17]
영토범위 확장
구약 창세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는 어떤 땅을 지정해 주셨는가? 하나님이 이민족(異民族)인 셈족과 가나안 족속에게는 지리적인 영토를 지정해 주었지만(창10:19, 31),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어떤 영토를 준다고 표명(表明)하지 않는다.[18] 영토는 지정해 주지 않고, 그냥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할 것이라는 약속만 주었다(창12:2). 영토가 없이 어떻게 큰 민족을 이룰 수 있겠는가? 이집트인에게서 건져내고, 그 땅에서 나와 아름답고 광대한 땅 여섯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는 약속을 모세에게 줄뿐이다(출3:8, 17 참조). 이와 다른 내용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집트와 바빌론 강대국 사이에 10개 족속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바 있다(창15:18-21). 그러나 이것은 영토범위 지정에 모순된 내용이 된다. 가나안 영토(창10:19)와 암몬 족속의 영토(신2:19)는 침해하지 말라고 했던 일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정하고 약속하는 영토 경계와 범위는 변수(變數)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전투적이며, 과거와 다르게 영토범위를 확장하는 일인데,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밟았던 지역의 탈환 약속이다(신11:23-24): “...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하고,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이는 역사적으로 강대국에게 포로로 끌려 다니던 땅을 나중에 차지할 때를 약속하는 것 같다. 그러니 근본적인 의미는 강하다고 약한 자를 함부로 침범하면 나중에 보복을 당하리라는 하나님의 위협이라 하겠다.
이스라엘 주변 강대한 민족들(신4:38; 7:1 등 비교)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이들과 전투를 행할 때 강한 믿음과 전투 정신을 요구하기 위함이다.[19] 히브리어 칼 동사와 사역 동사
‘야라쉬’
는 이민족들을 멸절하는 것을
의미한다.[20] 여기 지시한 중동지역 영토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지중해까지라는
지리적 경계는 이상적인 경계이다. 기원전 13세기 히브리인
집단이 이집트 종의 집에서 나와 광야를 지났고, 기원전 6세기
바벨론 포로에서 유프라테스 강가를 지났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어찌해서 고조선 한족(韓族)은 한반도 3배의
면적이 되는 중국 감숙성(삼위)-산시성(태백) 땅을 환인(桓因) 하느님에게서 환웅(桓雄)의고조선 국가영토로 받고 그 영토를 떠나야 했는가? 어째서 단군 고조선은
고죽(孤竹, 북경 근처)에서
동북 만주를 거쳐 한반도(韓半島)로 계속 밀려 들어와야 했는가? 환웅 고조선과 단군 고조선은 현재의 서부(西部)유럽지역만큼이나 되는 영토가 아닌가? 고조선 한족이 말은 교착어(膠着語)를 쓰면서 어순(語順)이 다른 굴절어(屈折語)를
쓰는 중국 화족(華族)의
한자어(漢字語)를 사용하느라 얼마나 불편 하였겠는가? 환인 하느님의 신앙과 홍익인간의 정신 대신 중국 유교(儒敎)와 인도 불교(佛敎)를
숭상하면서 하느님 뜻을 망각하고 하느님을 숨어 계시게 하였던 죄(罪)가
커서 환웅과 단군의 영토를 잃어버린 망국(亡國)의 자손(子孫)이 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대륙 북방(北方)세력과 남방(南方)해양세력의 각축장이 되어 아시아 동북세력의 평화를 상실한 것이
아닌가? 앞으로 하느님 신앙과 홍익인간 정신을 가지고 북방과 남방 세력을 방어할만한 강한 믿음과 강한 전투력(戰鬪力)을 길러야 하겠다. 현대적인 의미로 대한민국 국민은 북방(중국)과 남방(일본)의 수십 배 군사력 위협 아래서 철저한 전투적 방어 정신으로 무장되어야 하겠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미국의 군사병력의 제일주의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1950년 6.25 전쟁 중 군수 물자와 함께 영양가 높은 군대 레이숀과
병사의 생명을 존중하는 병원 의료체제 미국 정치 고위층 지도자가 입원 치료를 받는 우수한 의료진을 갖춘 육군병원 그리고 도서관은 세계 어느 나라도
따르기 어려운 국방(國防) 제일주의가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아시아 북방의 거칠고 무지한 협박과
남방의 야비하고 호전적인 국가 제일주의를 한족의 하느님 뜻의 홍익인간과 대동정신(大同精神)으로 대처하는 지혜와 용기를 가져야 하겠다.
홍익인간(弘益人間)과 5부체제 주곡주명주병주형주선악
환인 하느님께서 삼위태백영토를 지정하고 홍익인간의 뜻을 아들 환웅에게 전한 후 천부인 3개를 주어 그곳에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이 본문(本文)을 우리는 위에서 역사적-문학적인 고찰방법으로 삼위태백은 중국 땅에 있는 고대 고조선 영토로 중국 북서에서 동북 만주 땅을 거쳐 한반도까지 이어진 현 내몽골과 중국대륙 사이에 길게 뻗은 지역이요 서부 유럽만큼 넓은 영역임을 고찰했다. 고대 본문에 하느님 ‘환인’이 처음에 나오고, 그 하느님께서 아들 ‘환웅’과 대화하는 내용은 신화(神話)가 아니라 천상어전회의(天上御前會議)에 비교되고, 일상 인간의 상호대화보다는 계시적(啓示的)인 얘기와 비교됨을 논자는 구약성서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밝혔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먼저 해결할 일이 있다. 홍익인간은 누구의 뜻인가? 이 질문에 대답을 위해서 우리는 단군사화 본문(本文)을 번역하는 일이다: 첫째로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 있었는데, 늘 천하에 뜻을 두고서... 환인이 아들 환웅의 뜻을 헤아리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가히 홍익 인간할만한 까닭에, ...내려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를 보면 ‘석유’(昔有)의 주어가 환웅이 되어 ‘홍익인간의 뜻을 품은 주체는 환웅이다라고 해석하는 경우이다.[21] 둘째로 그러나 “고기에 이르기를 ‘태초에 환인이 계셨는데’(석유환인 昔有桓因), 서자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었다”로 번역하면, 석유환인 ‘태초에 환인이 계셨는데’라는 독립개별 동사문장의 주어가 환인이 되고, 서자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었다는 동사문장의 주어는 환웅이 되어, ‘석유’의 유(有)는 환인의 행위로, ‘삭의’(數意)의 뜻(意)은 환웅의 행위로 분리해서 번역하는 것이 문장 구문 상 맞는다고 본다. 그 다음 ‘홍익인간’의 가능성과 이유가 환인 아버지의 “하시삼위태백 가이홍익인간”이라는 구절과 직결된 것이면, 환웅의 뜻은 아직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하는 세상 통치의 열망일뿐 구체적으로 영토범위 삼위태백이나 홍익인간에 대한 뜻은 문장구문의 주어와 동사문장은 ‘부’(父)•환인과 연결된다.
따라서 홍익인간은 환인 즉, 환웅의 아버지(父) 뜻이라 해야 맞겠다. 지금까지는 문학적-문자적인 해석에 등한했던 학자들의 가르침이 일반인들로 하여금 환인 하느님은 몰라보고, 환웅은 쳐다보기만 하고, 단군만 알아보는 착각(錯覺)을 방치했던 것이 아닌가!
홍익인간이 인간 환웅이 아니라 환인의 뜻이라면, 그는 이념(理念)이 아니라 환웅이 신정통치를 실행해야하는, 즉 소명을 말하는 환인 하느님의 계시(啓示)로 보는 것이 맞겠다. 왜냐하면 홍익인간은 인간의 지혜나 목적이라기보다 하느님의 뜻으로 지상명령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5부 체제 주곡주명주병주형주선악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정리하면, ‘홍익인간’은 하느님의 뜻으로 환웅에게 계시되어 5부 체제를 갖춘 백성을 위한 민주 평등정치의 모범이라 하겠다.[22]
[1] 온창일, 『한민족 전쟁사』, (서울: 집문당, 2001), 1117쪽 참고.
[2] 환인과 환웅 관계에서 홍익인간을 계시하여 소명하는 ‘환인 하느님 말’, 환웅과 곰,호랑이 비유에서 인간됨을 약속하는 인간 ‘환웅의 말’이 단군사화 고기에 나와 있다면, 고기 앞에 위서, 고기 다음에 당의 배구전, 그 다음에 통전이 인용되어 있다. 1. 위서는 조선이 요와 같은 때라고 서술하고 있다. 2. 당 배구전은 고려 고죽국이라 부르고 주나라의 기자조선, 한나라의 3군 현도 낙랑 대방 등의 식민영토를 지적하고 있다. 통전은 4군 진번 임둔 낙랑 현도, 식민영토를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고기에 이미 기원전 1122년 주나라 무왕(호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한 것과 기원전 2333년 요임금시대와 백악산 아사달1500년 동안 다스린 역사를 말하고 있다.
[3] 참고 온창일, 위의 책, 36쪽, 각주 17) 史記,朝鮮列傳; 一然, 三國遺事; 東國兵鑑, 8-9쪽; 韓民族戰爭史, 21-37쪽.
[4] 왕검조선 王儉朝鮮, 참고: 일연, 『삼국유사』, 기이 제이 (記異 第二), 고조선(王儉朝鮮), 이른바 단군신화, 단군사화(檀君史話).
[5] 조소앙은 우리 민족과 전 인류의 행복을 실현함에 있어서 "유일 절대적 기초가 되는 것이 균등이라 보았고, 한국독립당의 중심사상이 균등이라 천명하였다. 우리의 건국정신과 민족의 최고 공리인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취지를 평등, 균등의 정신이라 해석 하였다(정영훈, “홍익인간 사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 『고조선 단군학』 제34호, 166쪽, 2016. 6 재인용 각주 23) “한국독립당의 당의해석”, 『소앙선생문집』 상, 207쪽 참고).
[6] 세계 2차 대전을 계기로 독일 나치동맹의 패배는 공산당 사회주의 이념과 자유민주주의로 재편되어 중국의 국공 내전, 한반도 6.25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1989년 동서독이 독일 통일로 구소련이 해체된후 동유럽의 독립 이후 베트남은 월맹의 월남흡수 통일이 되고, 동서독은 서독의 동독 흡수로 통일되고, 구소련은 동부유럽을 내주고 러시아로 위축되었다. 그런데 2000년 전후로 한반도는 1980년대군사독재 정권에 반기를 들었던 운동권 세력이 주사파집단으로 변질되면서 남북통일을 빙자하여 대한민국이 북조선보다 수십배의 경제력과 군사력 보유에도 불구하고 북조선 공산당과 합작하여 중 러의 지원을 받아 한 미 일공조체제를 해체하면서 자유 민주주의를 공산당 사회주의로 흡수당하게 하려는 찬탈행위를 보이고 있다. 성서적인 관점애서 보면 후자는 거짓 사탄의 세력으로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 천하를 꾀는 자라 하겠다(계 12 : 7-9 참조).
[7] ‘인간을 복되게 할 만하니’의 해석은 간접적인 의미로 유효하다.
[8] 장삼식 편저, 『漢韓大辭典』, 개정증보판, (서울: 학원출판공사, 1993), 685쪽, 7째 의미.
[9] 장삼식, 상게서, ‘③ 굳셀 환’ 744쪽 참조.
[10] 이에 대해서 성서 문학적인 관점으로 구약성경 시편 84 : 12(11) 확실히 야웨 하나님은 태양이고 방패이시다...는 본문을 보완 참고할만 하겠다. 하나님이 태양처럼 환한 빛으로 비유되어 제왕의 힘을 나타내심을 고대인들이 고백한 것이다. 시 84 : 4(3)“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야웨시여”구절의 “나의 왕”이 “하나님이 태양이시다”와 의미적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단군사화의 환인(桓因)도 밝을 환이 해 태양으로 비유되고 빛의 근본으로 환인은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의 이중성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고대 중동 아마르나 문서(Amarna Text)는 팔레스틴 제후들이 이집트 파라오를 ‘우리의 태양’이라 부른 것에 비교된다. 히브리어 사전 GK 849 쪽 -2. Zinne 정점(頂点)은 하나님의 구상적(bildlich) 의미이다( GK 849 쪽 ; J. Kraus, Psalmen Bd. XV / 2, 60-150, 1978, S.746 ; F.L.Hossfeld/ E. Zenger, HThKAT Psalmen 51-100 Herders Theol.Kommentar zum AT., 2000, 508 쪽 참조 ; 이런 맥락에서 ‘환인’(桓因)은 고대 고조선인에게 최고의 우주적인 빛의 근원인하느님이요, 제왕적인 권위의 존재로 이스라엘 하나님 야웨가 태양이요 제왕의 영화로운 존재로 찬양되는 것과 비교된다고 하겠다.
[11] 장삼식, 상게서, 660, 563쪽.
[12] 이러한 해석에 대해 다음을 참조하라: http://blog.naver.com/totum/100018685431; 한편 이러한 해석은 구약성서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이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창조시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과 평행된다고 볼 수 있다.
[13] 이에 대해서는 최남선, “단군고기전석(檀君古記箋釋)”, 『단군신화연구』, 이은봉 편저, (서울: 온누리, 1986), 23-24쪽 참조.
[14] 강인구 외, 『역주 삼국유사』, (서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3), 143쪽, 각주 11참조.
[15] 이에 대해서 http://blog.naver.com/casahoo/20001725418 원문 참조
[16] 창10:31 “이들은 셈의 자손이니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참조; 창10:19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를 비교
[17] 신2:19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참조
[18] 창12:1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참조
[19] 성경의 전쟁 이야기들에서 중요한 개념은 바로 야웨 신이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워 주신다는 ‘야웨 전쟁’의 개념이다. 전쟁에서의 야웨의 주도성은 기적적인 자연 현상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예를 들면, 모세를 쫓아가던 바로의 군대를 어둡게 하고, 이스라엘 진영에는 밝은 빛을 비춰주어 바로의 군대를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장면(출14:20),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동풍으로 바다를 말리는 장면(출14:21), 그리고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무엘이 제사를 드릴 때, 우뢰를 통해 적을 물리치는 장면(삼상7:10) 등이 그것이다. 흥미롭게도 단군사화 본문에서도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 등과 같이 천체와 기후를 움직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20] 이에 대해서 Devarim, (Olam Ha-Tanach vol. 5; Tel Aviv: Divrei Ha-Yamim, 2002), 107쪽(Hebrew) 참조.
[21] 임재해, “홍익인간 이념의 역사적 지속과 민속문화의 전통,” 단군학 연구 제31호, 267쪽 참조; 이 병도 역주, 『삼국유사 병(竝) 원문』, 1969년, 180쪽 비교.
[22] 단군사회에서 국가 건국 요소 세 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 1)영토 – 삼위태백, 2)국가 건국 통치이념 홍익인간, 3) 3000명과 백성.
'단군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온 인류의 하나님 (0) | 2023.09.02 |
|---|---|
| 6하원칙으로 분석한 단군 사화 (0) | 2022.12.25 |
| 홍익인간의 현대적 해석 - 역사배경과 어의론적 이해 (0) | 2019.11.18 |
| 역사적 예수와 단군사화 (0) | 2018.07.13 |
| 성서적 관점에서 본 단군사화 이해 (0) | 2017.08.02 |